출처는 잡지 paper의 2008년 8월호입니다. 두 달 과월되었으니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혹시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저작자는 황경신 씨입니다. 외국에 있어서 이 잡지를 구매해서 보시지 못하는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객석>의 인터뷰(이 인터뷰는 이 글 밑에 트랙백으로 링크해두었어요.)와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터뷰 글입니다. 꽤나 길어서 타이핑 하는 것만도 오래 걸렸네요. 불펌하지 말아주세요.

by. poise



우울하다.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슬프다. 세상에 떠도는 타인의 슬픔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꿈을 꾼다. 혹독하고 "비틀거리는 꿈이지만" 꿈을 꾸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기에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답 비슷한 것이라도 찾고 싶다. 내가 만난 <에픽하이>의 타블로, <꿈꾸는 라디오>의 타블로, 또는 인간 이선웅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알고 싶어요."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인가요? 어제도 몇 시간 못 잤다고 들었는데

많았는데, 지난 앨범 내고 활동 끝나가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이상한 거 많이 했어요. 회사에서 별로 안 좋아할 만한 일들. 독립, 단편영화를 찍었고, 연주음반을 냈고,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는데 방송정지 먹었고, 아예 홍보도 안 했고, 한동안 녹음실에서 처박혀 살다가 나와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니까 좀 낯설더라고요. 제가 운전을 안 하잖아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편한 게 있잖아요. 아마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는 건지도.

설마 그럴 리가요.

생겨도 불편해서 헤어지게 되더라고요. 이 일도 그런 것 같아요. 별로 운전할 마음이 없는데 운전을 하고 있었떤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요. 운전을 안 하면 현실적인 불편함은 따르겠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운전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하는 일 중에서 관심이 있는 것들, 의미가 있는 것들, 실질적으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건 집중해서 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이제 다 줄였어요. 방송활동도 대폭 줄이고.

방송은 좋아서 한 거 아니었나요?

예전에는 따지지 않고 좋아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좋아할 줄 몰랐으니까. 그런데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방송에서 제가 예전만큼 큰 엔터테인먼트를 주는 것 같지가 않아요. TV를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나 감동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방송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있잖아요. 그런데 남들이 저보다 잘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런데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예능의 덕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 음악으로 되니까 거만해져서 안 하는 거 아닌가. 절대 아니에요.

사실 유명해지려고 방송에 나간 것도 있지 않아요?

사실 그랬어요.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나오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될 떄는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저도 재미없고 남도 재미없으면, 제가 굳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 시간에 곡을 만들거나 글을 쓰는 게 낫지. 제 지금 활동은 라디오, 음반작업하고 공연, 그게 끝이에요. 저는 그게 좋아요.

그것만으로도 바쁠 것 같은데요.

24시간으로 부족한 스케줄은 아닌데, 많은 것으로 채워지는 24시간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더 풍만하게 해서 24시간이 되는 거니까, 훨씬 더 좋아요. 예전에는 라디오 두 시간을 하러 가도, 앞뒤로 생각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이젠 스케줄의 여유를 만들어놓으니까 전후로 시간을 내서 준비할 수도 있고, 정성을 들여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까. 곡을 만들 때도 그렇고. 그게 너무 좋아요. 돈은 덜 벌더라도, 즐거워서 시작한 건데, 쫓기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라디오에서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하는 편인가요?

다는 못해더 어떤 방식으로든 하긴 해요. 라디오는 편집이 없어서 좋아요.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나요?

방송이 우울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제가 암울한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거든요

원래 우울하세요?

행복하진 않아요.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요.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웃음) 그런데 듣는 사람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충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죠.

너무 우울해서? 비관적이어서?

예. 그런데 긍정적일 때도 많아요. 프로그램 이름이 <꿈꾸는 라디오>니까. 꿈에 대해서는 한없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현실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게 우리 방송의 특성이라, 현실 이야기를 하게 되면 좀 많이 우울하죠. 조울 방송이라는 이야기, 들어요. 게스트가 있을 때는 즐겁고 밝은데, 처음 한 시간은 다운되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가끔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게 저라서, 컨트롤할 생각은 별로 없어요. 다듬기는 하되.

그게 타블로의 매력이잖아요.

매력이자 위험 부분이죠.

주사가 있어요?

그냥 미친놈 같아요. 헛소리 많이 하고, 와일드해지고. 어떨 때는 울고. 친구들이 제가 취하면 냅킨을 제 앞에 갖다놔요. 헛소리하면서 울 때 많아요.

꿈 이야기를 할 때는 낙관적이라고 했는데, 5집 앨범에 실린 <낙화>를 들으면서, 꿈에 대해 그렇게 비관적인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극히 비관적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싶었어요. 그게 진짜 제 심정이거든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꿈은 어쨌든 누가 뭐라든 아름답고 순수하고 위대한 꿈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걸 등지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남들한테는 그렇게 안 보여도, 이런 내용을 얘기하려다가 생각해보니까 가장 절망적인 사람의 꿈이 가장 극대화된 아름다운 꿈일 수도 있더라구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름다운가요?

불가능하니까 아름다운 것 같은데.

이루어지면 아름답지 않은가요?

불가능한 꿈들이 역사를 만들어나간 경우가 많잖아요. 꿈꾼 대로 된 건 아니지만. 컴퓨터도 누군가 그 당시에 말도 안 되는 꿈을 꾼 거 잖아요. 이카루스 날개처럼. 그게 세상이란 걸 더 좋은 곳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고. 저에게도 불가능한 꿈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거죠?

어린 시절의 꿈들인데, 세계평화, 이런 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다들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나마 이것보다 조금 나은 세상. 그걸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저보다 오래 살 젊은 친구들이 생각하는 게 달라지고, 그런 꿈을 꾸고, 그러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제가 하는 음악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걸 듣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저도 그 꿈을 이행하기에 부족한 것 같고, 현실상, 전체적 문화 구조상 불가능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낙화>를 쓴 거에요.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한 뮤지션도 있잖아요. 존 레논이라든지. 타블로는 아직 과정 중에 있는 거고.

존 레논은 존 레논이잖아요.

타블로도 타블로잖아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은데요.

제 꿈 비슷한 것도 끝내 못 이루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존 레논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저는 존 레논의 1억분의 1도 못 이루고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걸 받아들였어요. 사춘기 때는 존 레논, 밥 딜런, 이런 사람들 보면서 세상을 바꿔야지. 내가 하는 게 음악이든 글이든, 세상을 흔들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망상이 심했어요. 나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다, 나는 운명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심할 정도로.

무엇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 세계평화?

그건 아니더라도, 잘 모르겠어요.

선택받았다면 알아야죠.

완벽하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 수는 없어도, 세상을 크게 뒤흔들고 사라질 수 있는 사람. 그런 망상이 있었는데,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생각한 건 너무 많은 자신감, 망상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고 할 줄 아는 게 몇 가지 있는 것 뿐인데, 하고 약간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걸 받아들인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있는데, 이야기를 하면 암울해요. 대학 1학년 때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 죽었어요. 그 친구는 영화 공부를 하러 대학을 갔고 저는 문학 공부를 하러 갔고 둘이 큐브릭 같은 사람들처럼 세상을 감동시킬 영화를 만들 거다,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저한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한 거죠. 꼭 그렇게 해라. 그때는 그것때문에 오히려 힘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룰 거다, 생각했고. 어느 순간에 그게 음악이다, 해서 애를 쓰고는 있는데, 아직은 제가 너무 부족하고, 십 년 정도는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면 되잖아요.

예, 하긴 할 거에요. 앨범 30~40장은 더 내야,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내가 만들 수 있을 지 알 것 같고, 그때 가서 내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희망적인 게 별로 없거든요. 가요계도 지금 이 모양이고. 가요계와 음반시장 불황이라는 게, 포커스가 너무 경제적으로 치우쳐 있잖아용. 앨범이 안 팔린다, 공연 수익이 적다, 다 돈 이야기인데, 그것보다 치명적이고 무서운 건, 전반적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는 거에요. 예전에는 누가 만들었건 간에,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잔잔한 존중이 있었어요. 음악뿐 아니라 책, 영화, 이 모든 것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존중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없어져서, 완벽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표면적으로 너무 많이 없어져서.

왜 그럴까요?

제가 볼 때는 혼란이 일어난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인터넷의 발전 같은 것 때문에, 원래는 책을 쓰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고 책이 나와야 볼 수 있었고, 영화와 음악도 그랬는데, 이제는 책을 대신하는 블로그가 있고, 영화를 대신하는 UCC가 있고, 음악을 대신하는 디지털 음원들이 생겼잖아요. 물론 정해진, 잘하는 사람들만 해야한다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해야 하고 누구나 하는 무엇이 예술이라는 생각은 해요. 문제는, 그러다 보니까, 누가 작품을 만들어도 뭐 어쩌라고, 이런 거 수없이 많은데, 이렇게 되어서 소중함이 없어진 거죠.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클래식이 파묻혀버리는 거죠. 보이지도 않으니까.

예 그래도 클래식이 나오면 사람들이 알긴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옛날에는 좀 더 빨리 눈치챘을 것들이 지금은 묻히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옛날에도 그 시대가 알아주지 않았던 클래식들은 있었죠. 우리는 아직 모르는 거죠.

저는 왠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죽기 전에도 죽고 나서도 안 알아줄 것 같아요.

이미 많이 알아주고 있지 않나요.

그건 그냥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지, 제 음악이 좋아할 만한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스스로도. 그래서 계속녹음실에 가는 거고. 일 년의 반 이상을 녹음실에 처박혀 사는 거에요.

지금까지 만든 곡 중에서, 이건 정말 잘 만들었다, 싶은 곡, 있지 않나요.

<낙화>는 가사를 제가 원하는 대로 잘 쓴 것 같고, 저 자신을 평가하긴 웃기지만, 몇 곡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제가 해야 하는 것의 노예가 되어버려서. 제가 힙합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제 감성은 힙합이 아니에요.

록인가요?

록이죠.

클래식?

예, 그쪽에 더 가까워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잖아요. 힙합을 시작했을 땓, 힙합 옷을 안 입었어요. 저한테 어울리지도 않고 불편해요. 연주 음반을 냈던 이유가, 나 사실 이런 거 하고 싶다, 내 감성에 좀 더 가까운 것들. 힙합을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는데, 랩은 정말 좋아해요. 랩을 엄청 좋아해서 힙합을 하는 거지, 힙합을 좋아해서 랩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랩은 그 특성상 문학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형태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리듬도 있기 떄문에 잘 사용하면 문학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전형적인 힙합의 강렬함 같은 건, 제가 그렇게 강렬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척은 할 수 있는데, 심지어 척을 잘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척인 거니까. 이번에 <에픽하이> 미니앨범으로 소품집이 나와요. 작은 앨범인데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취지로. 5주년이거든요. 그 곡을 작업 중인데 예전에 했던 것들과 엄청나게 달라요. 예쁘고 잔잔하고 요란스럽지도 않고. 사람들이 늙었다 그럴 것 같아요.(웃음)

멤버들끼리는 뜻이 맞나 봐요.

다행스럽게, 뜻이 맞는다기보다는, 저한테 맞춰줘요.

그건 굉장히 행복한 거죠.

굉장히 고맙죠.

멤버들이 타블로가 하자는 대로 안 하면 삐치나요?

그냥 안 해요. 제가 하자는 대로 안 하면. (웃음) 애들도 처음에는 1, 2집 때는 엄청나게 싸웠어요. 해체하자 그러고. 제가 설득을 했어요. 만들어서 보여주고. 내가 항상 옳다. 나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 해봐라, 그런 다음에 못하는 것을 보여줄 때까지 잔인하게. (웃음) <에픽하이>는 만들 때부터 제 비전을 핵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멤버들이 저한테 많이 맞춰졌어요. 되게 고맙고, 물론 애들에게 아이디어가 있을 때, 아까는 농담이고, 다 반영하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예를 들어 멤버 한 명이 클럽에서 노는 노래 하자, 이렇게 말하면 저는 안 한다고 하죠. 관심이 없으니까.

거절을 잘 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되게 못했어요. 누가 부탁하면 다 해줬어요. 그러다 깨달은 게, 진짜 저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제 이름, 저를 도용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도와달라고 할 때면 진짜 인간적으로 다가왔다가 그 다음에는 쌩이에요. 그런 걸 많이 당한 다음에는, 누가 부탁을 해도, 죄송합니다,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씹어요. 곡 써달라고 했는데 안 써줄 수도 있잖아요. 저도 취향이 있는데, 그리고 거절할 때는 시간문제가 50퍼센트고, 나머지 50퍼센트가 그 사람이 하는 음악과 제가 만들 수 있는 음악이 매치가 안되서 그래요. 자신이 없는 거잖아요. 깍듯이 얘기해도, 무조건 씹어요. 사람인 게 그런가 봐요. 도와달라고 했으면서, 못 도와준다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 받으면 되는데, 저 새끼는 도와주지도 않고, 그러죠. 생판 모르는 사람도, 그런 부탁을 해요. 물론 저는 씹든 말든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그런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부탁할 때 그 사람이 거절할 가능성을 미리 생각해요. 그 사람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부탁을 하는 거잖아요. 안 그러면 강요하죠. 지금 당장 해. 그러죠. 그러니까 거절당해도 저는 기분 안 나쁘거든요.

타블로는 부탁으로 뭔가 얻고 나서 모른 척한 적 없었어요?

없었어요. 1집 때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과 6년째 아직 작업하고 있고.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예. 예를 들어 제 피아노 세션 해주는 형이 있어요. 밴드 같은 형식으로 드럼하는 분도 있고. 그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분들도 많을 거에요. 우리나라 세션형들은 세계적으로도 잘하거든요. 그래도 그 사람들과 계속하는 건, 책임감보다, 내 사람이니까 나랑 제일 잘 맞지 않을까, 여자친구가 있어도, 그 여자친구보다 더 예쁜 여자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도 내 여자친구니까.

그다지 정확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설득력이 있네요. (웃음)

정확하진 않은데. (웃음) 가끔 짜증나고 외도하고 싶을 때는 있어도 그래도 내 여자친구잖아요. 누가 뭐래도 제일 예쁘잖아요.

최근에 연애해본 게 언제인가요?

4집 나오기 전. 그 이후로 사람을 만난 적은 있는데 연애를 했다고 얘기할 수는. 사랑은 안 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너무 오래 혼자 있다 보니까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얘는 무슨 앨범이 계속 나와. 이렇게 생각하는데 혼자 그렇게 혼자 오래 있어봐요, 할 게 없어요.

계속 일을 만드는 거군요.

예, 시간을 채우긴 채워야하니까. 저도 모르게 곡을 만들고 있고. 모아지면 누가 내자고 하고. 그랬던 것 같앙.

연애를 할 때는 창작을 덜 하게 되나요?

4집이 2CD 였잖아요. 그때는 2CD를 내려고 해서 낸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곡이 만들어지니까 낼 수 밖에 없었어요. 연애할 때거든요.

타블로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사람이었군요.

그랬을 가능성이 있어요. 헤어졌고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슬럼프도 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차피 만드는 건 똑같다고 해도,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가까운 곳에 한 명 있는 거잖아요. 이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고, 이 사람에게 좋아하는 뭔가를 만들고 싶고, 그런 게 있는데. 이제는 제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릿 속에 있는 어느 누구, 불특정 누구를 위해 만드니까 가끔 혼란스러울 때도 있죠. 한 명이 있어서 내가 너를 위해 곡을 쓸게, 들어봐,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에픽하이>의 앨범들을 들으면서, 타블로에게 구원은 화두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원할 수 있다, 보다는 구원받고 싶다는 갈망이 있어요.

크리스천이죠?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어요. 교회는 열심히 안 다녀요. 솔직히 말해서 안 다녀요.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인간이 타인을 구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구원받고 싶게끔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전도라는 개념이, 아프리카나 어디로 가서, 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믿게 되면, 우리가 그 사람을 구원한 건 아니잖아요.

매개가 되는 거죠.

구원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거죠. 꼭 신앙적인 게 아니더라도, 현실에서의 구원, 작은 구원들로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는, 전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고, 저도 그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타블로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다른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공감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나가 저보다 한참 위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뛰어난 재능은,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동감할 수 있는, 제가 느낀 듯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쓴 적이 있어요. 그건 맞는 말 같아요. 제가 어릴 때 기아대책에서 일했거든요. 최연소로 연구원에 있었고 훈련도 받았는데, 저는 세계 기아 어린이들과 너무 다른,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고통을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체험은 못해도,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아플까.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실직적으로 누가 슬프면 제가 되게 슬퍼져요. 이상하게 들을 수 있지만,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슬픔을 교감하는군요.

길 가다가도 슬퍼 보이는 사람 있잖아요. 진짜 슬픈지 알 수도 없고, 무엇 떄문에 슬픈지도 모르는데, 그걸 볼 때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져요. 그래서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나.

  
어릴 때의 환경은 어땠나요?


솔직히 말해서, 집안 자체는 경제적으로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힘든 걸 다 겪으셔서.

막내죠?

예, 제가 늦둥이라. 형이 저보다 8살 많고 누나가 7살 많아요. 형, 누나는 어려움을 겪었죠. 아버지가 고아였고 그렇다 보니까. 제가 태어날 때쯤에는 안정적인 상황이었는데, 부모님이 없었죠. 아버지는 해외 건설 쪽 일을 하셔서 항상 해외에 계셨고, 어머니는 미용실 하시니까 나가 계시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뭐 했어요?

책 많이 읽고, 중학교 때 저를 해외 사립학교에 넣어놓고 한국으로 떠나셔서. 저는 사립학교를 권하지 않아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한 기숙사에 넣고 공부를 시키고 하다 보면 경쟁하는 것도 너무 빨리 배우고, 결국 퇴학당했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온 거에요. 부모님들이 없으니까 문제를 일으키기가 너무 쉬워요. 지극히 안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나요?

잘 모르겠어요.

트라우마가 있나요?

친구들 세상 떠나고 그런 건 당연히 큰 트라우마가 되었죠.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넷인데, 그 중 두 명이 지금 없어요. 한 명은 4집 때 떠났고, 그래서 그렇게 한없이 우울하게 나온 거고. 죽기는 싫은데요, 정말 싫은데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건 가까이서 경험했고, 너무 어린 나이에 많이 봐서, 게다가 아버지도 한 번 고비를 넘긴 적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암울한 건 있는데, 평상시에는 괜찮아요. 가끔 생각날 때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세요?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많이 나요.

무서워요?

무섭죠. 5집 앨범 만들 때는 주변에서 3명이 자살했어요. 저와 직접적으로 친한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친구의 친구, 친구의 아는 동생, 아는 동생의 여자친구, 이런 식으로. 그래서 <One>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면서요?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상황이면.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상황에서.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나요?

자살은 안 할 거에요. 오해받은 적은 있어요. 대학 다닐 때 오해를 받아서, 정신 치료를 1년 반 정도 받았어요.

약도 먹고?

먹어야 했는데 전 안 먹었어요. 사람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생각도 별로 없고, 무난해지고. 교실에 있는 애들이랑 똑같아지더라고요. 안 우울한 게 이거구나, 차라리 우울할래, 그렇게 생각했죠. 누가 제가 자살하려했다고 학교에 얘기를 해서. 대학원 다니는 마지막 한 해 동안은 학교에서 약간 어두운 존재. 사람들이 피하고, 그때 대학 친구들 다 잃어서 졸업 후에 연락하는 애가 단 한 명도 없어요.

우울함이 기본에 깔려 있죠?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늘 우울하진 않죠.

제가 가지고 있는 우울함은 나쁜 우울함, 악하고 어두운 우울함은 아닌 것 같아요. 약간 희망적인 우울함이라고 해야하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우울한 거. 차라리 희망이 없더라면. 다행히 저는 좋은 것들 때문에 우울한 거니까.

뭔가 원하는 게 있는데 못하니까 슬픈 거 아닌가요.

그렇죠. 옆집에 심하게 아픈 사람이 살아요. 매일 마주쳐요. 그러든 말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우울하지 않겠죠. 그런데 왜 저사람은 아프지, 나는 멀쩡한데, 저 사람은 나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 아프고 부러울까, 그러면서 슬퍼하는 건,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건데.

세상과 소통을 하니까 그런 걸 느끼는 거겠죠. 촛불집회에 나가본 적 있나요?

없어요.

싫어해요?

아니, 그렇진 않아요. 어릴 때는 생각없이 반항적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답 비슷한 것이라도 찾아보고 싶어요.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답이 없잖아요. 제가 답을 모르는 한 행동하지는 않으려고 노력을 해요.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가요?

제가 롤모델이 되고 싶진 않아요. 나라는 사람이 완벽해져서, 누구한테 롤모델이 되는 걸 원하진 않아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전 사람이고, 한없이 선할 수도 없고, 다른 인간과 똑같이 허점이 있고 잘못이 있고 죄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든 저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 대신 제가 만드는 것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 영향?

죽고 싶은 사람이 살만한 이유를 알려주는, 그런 것도 있고, 도움이 되는, 듣고 위로가 되는, 막상 저 자신은 그 사람을 위로할 가치가 없다고 해도, 적어도 제가 만드는 것들은 그럴 가치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걸로 저도 위로받을 수 있고,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질 수도 있죠.

완벽주의자인가요? 

일을 할 때는 완벽을 추구하는데 워낙 미완벽하니까.

완벽하고 싶지 않나요?

제가 완벽하게 만족하고 싶긴 해요. 그게 불가능하죠. 안타깝게, 저한테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게, 남한테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게 아니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세요?

안 할 수는 없죠. 음악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잖아요.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 듣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을 안 하면 너무 이기적인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해야 될 때는 하겠죠. 그래도 어떤 누군가는 생각을 해야죠. 나는 아무도 상관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음악을 한다, 얘기하는 건 아마 말만 그렇게 하는 걸 거에요. 듣는 건데, 벽에다 대고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제 나오나요?

10월에 나올 거에요. 대학 다닐 때 썼던 단편소설들. 그냥 순수문학이에요. 드라이하고.

최근에 쓴 것도 있어요?

없어요. 그건 내년쯤 하려고. 앞으로는 책을 많이 쓸 생각이에요.

어떤 이야기들인가요?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그때 제가 뉴욕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다 우울하고, 지루하다고 느낄 것 같아요. 책이 나오면. 제 음악 팬들은.

왜요?

옛날 프랑스 영화들 있잖아요. 많은 일들을 일어나지 않는데 대사는 많고, 그런 글들이에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고 싶은 건가요?

아뇨, 평가는 뭐.

사진보다는 글을 더 잘 쓴다고 생각하시나요?

예, 그때는 정말 잘 썼어요. 10년 전에는 엄청나게 잘 썼어요. 제가 음악을 안 하고 계속 글을 썼다면 미국에서 꽤나 괜찮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어요.

왜 글을 그만두고 음악을 택했나요?

가사를 쓴 거죠. 후회돼요. 굉장히 후회돼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에는 음악이 더 효과적이 아닌가요?

매우 멍청해졌어요, 제가. 그때는 정말 매순간 빛났어요, 정말. 눈및이랑 모든 생각들이 빛났어요. 그런데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가끔 그러다가 빨리 꺼지고. 그때의 나를 회상해보면 모르는 사람 같아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뭔가요? 글 쓰는 것?

글 쓰는 건 되게 좋아요. 그런데 제가 궁극적으로 뭘 할 건지는 아직 모르겠고, 뭘 하기 싫은지는 알아요. 정말 하기 싫은 일들은 많아요.

세 가지만 얘기해보세요.

연예인. 두 번째는 살인자? 세 번째는 돈 관련된 것. 돈 만지고 그런 거. 관심없어요. 돈이 좋긴 좋은데. 돈 벌기 위해서 사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요. 인생 목표가 엄청나게 돈 벌어서 부자가 되는 거다, 이건 구린 것 같아요. 부자 되면 뭐 할 건데. 쇼핑 이런 거 안 좋아해요. 구매를 안 해요. 구매욕도 별로 없고. 돈을 많이 벌어도, 할 게 없을 거 같아요.

소유욕이 별로 없는 편인가요?

예, 별로 없어요.

질투는?

사람은 좀 다르죠. 여자친구 사귀면 소유욕 있죠. 옛날에는 정말 엄청났어요. 진짜 스토커 수준이었어요. 짜증날 정도로.

그래서 도망간 사람도 있어요?

결국 그것때문에 도망가는 거겠죠. 이제는 그런 거 없어요.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닌 것 같으면 정리하는 거고.

헤어지고 나서도 따라다니고 그랬다고요?

옛날에는 그랬죠. 심하게 그랬죠.

그래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걸 깨달았군요.

예,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웃음) 다른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 거니까. 그 사람도 저와 헤어지고 싶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소울메이트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미 스쳐 지나가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가끔 들고. 안 나타나요.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나요?

저는 똑똑한 사람들이 좋아요. 사람이 뭘 안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거잖아요. 자기 외의 것들에. 이것저것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순하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거에요. 저는 많은 걸 아는 사람들이 좋고, 제가 모르는 뭔가를 아는 사람들이좋아요. 제가 모르는 걸 알면 그런 데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자들을 좋아할 때도 야망이 있는, 꿈이 있는, 뭔가를 눈 부릅뜨고 하는, 그런 사람들.

나는 어떤 사람이다, 말할 수 있어요?

아뇨, 아직. 그걸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지금의 나는 아니에요.

거울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피곤해 보인다, 지쳐 있구나, 늙어가고 있다. 그런 생각. 제 머릿속의 저는 아직도 소년이에요. 그런데 아니니까. 우리 아버지한테 제가, 나이 드는 게 어떤 기분이에요, 물어본 적이 있어요.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욕구와 희망과 꿈과 하고 싶은 게 그대로 있고 몸만 늙어가는 거다,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되게 우울하더라고요.

타블로는 4차원적인가요?

지극히 평범해요. 가끔 발상이 특이한 것뿐이지, 사상이나 이런걸 따지고 보면 평범해요. 1더하기 1은 2라고 생각해요.

앨범을 완성할 때마다 많이 운다고 했는데.

만들 때 많이 울어요. 그때랑 완성되는 날.

왜요?

일 년을 만들잖아요. 요즘 대부분의 가수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다음에 노래만 부르기 때문에 2주 밖에 안 걸려요. 그걸로 나와서 활동하고 인기도 얻고 돈도 벌고 그래요. 우리는 녹음실 들어가서 악기 소리 하나하나를 우리가 다 해요. 누가 뭐 해주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일 년이 지나가면 앨범 한 장은 앞에 있는데, 그동안 잃은 것들을 생각하게 돼요. 부모님을 본 지 지금 4개월 됐어요. 말도 안 되게. 얼마나 멀다고. 여자친구 없을 때가 대부분이고. 제가 백 년을 산다 해도 그 중 100분의 1이 한 장 만들기 위해 날아갔잖아요. 다시 안 돌아오잖아요. 이걸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데, 결과가 뻔하거든요. 아무리 좋아도, 박수는 받고 그러겠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비판하는 사람,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일년이 지나가면 수많은 앨범 중 하나로 바람의 먼지처럼 지나가고 끝이잖아요. 완성하고 나면, 4집은 거의 2년 걸렸는데, 이 많은 시간과 수많은 밤들을, 내가 미친 거 아닌가. 아깝다, 그런 생각 들 때가 되게 많아요. 제가 내년에 서른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십대 전부를 여기에 바쳤거든요, 청춘을. 남은 게 몇 장의 앨범밖에 없으니까.

욕심이 많으세요?

그것보다는, 가끔 이 앨범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5년 동안 가족들과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다면, 5년 된 여자친구도 있고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좋아하기 때문에, 어쨌든 말로는 내가 만든 음반이, 내 인생의 한 시대를 담은 걸작이다, 언젠가 되돌아보아도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은 것처럼, 이러지만, 제가 아기들을 되게 좋아해요. 미쳐요. 지나다가 아기들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옆에 가서 같이 있어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아이밖에 없잖아요. 새로운 생명. 그것과 가끔 비교를 하는 나 자신도 우습고.

그런데 왜 계속하죠?

멈출 수가 없어서 만드는 거에요. 이건 제가 하고 싶고 하기 싫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멈출 수가 없어요. 저도 모르게 하고 있어요. 중독되었나 봐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해야 돼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몇 가지나 알고 있나요?

자신이 좋아하고 좋아해주는 이성을 만나는 게,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궁극의 여인이 나타나면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내가 음악 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 조용히 집에서 음악하고 그만둘 것 같아요. 음악 아니면 그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저는 사랑을 택할 거에요.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난 적 있나요? 연애와는 다른 건데.

다르더라고요. 제가 사귀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연애할 때 끌리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랑 달라요. 철이 덜 든 건가.

아직 결혼이 절실하지 않은가 보죠.

결혼은 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어요. 여자가 고생할 거에요.

자상하지 않은 편인가요?

자상할 때는 자상한데, 아닐 때는 완전히, 지랄같아요.

나쁜 남자인가요?

나쁜 남자는 아닌데, 못 말리는 남자? 나쁜 남자는 카리스마라도 있잖아요. 전 그냥 컨트롤이 안 되는 거.

무엇에 가장 화가 나나요?

불필요한 거짓말요. 굳이 안 해도 되는 거짓말인데 거짓말할 때 진짜 화나요. 자기가 하는 일을 대충대충 하는 사람들, 화나고요.

곧 서른이 되는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제 인생에 굉장히 큰 변화들이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에 일어날 거예요. 다음 몇 년 동안 얘 뭐 하는거야? 미쳤나? 그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라디오, 글 쓰는 것, 단편영화, 그런 일을 하면서, 욕할 거면 욕해라,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정말 올바르고 필요한 것을 할 거다, 이런 마인드로 제 인생을 설계해나갈 생각이에요.

PAPER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세 권을 꼽는다면?

Michael Chabon의 <The Amazing Adventures of Kavalier and Clay>라는 책이 있어요. 홀러코스트 때 나치에게서 미국으로 피난을 간 유태인 형제가 슈퍼맨 같은 만화책을 만드는, 슈퍼 히어로를 창조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아주 두꺼운데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그 책으로 이 작가가 퓰리처상을 받았어요. Jhumpa Lahiri의 <Interpreter of Maladies>. 인도 사람이고 미국에서 작가로 활동하는데, 진짜 잘 써요. 단편소설 모음. 그리고 이병률의 <끌림>. 진짜 이 책 너무 좋아요.

타블로가 생각하는 혁명이란?

다수의 성향을 반대하는 소수가 다수를 대치하게 된 다음에 또다시 그 비슷한 성향을 가지게 되고 또 다른 소수가 또 그걸 하게 되고 계속 돌아가는 것. 말그래도 revolution. 그래서 사이클이란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한 번 싸워서 얻어낸 다음에 죽을 때까지 안심하고 있으면 안 되고, 내가 반대했던 것과 나 자신이 똑같이 되었구나, 스스로 자신을 또 한 번 무너뜨릴 줄 아는 게.

쉽지 않잖아요.

내가 하려는 게 그거에요. 제가 공부를 하다가 반항하고 혁명이라 생각한 게 음악이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하고 있는 음악과 지금 제 위치가, 그때 제가 피하고 싶었던 것과 싫어했던 삶을 어쩌면 비슷하게 닮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자신을 위한 혁명을 다시 한 번 일으켜서 물갈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물아홉의 쿠데타군요.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저는 행복이란 게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느껴본 적이 없나요?

순간순간 즐거움은 느껴본 적 있어요. 온화함? 그게 행복인지는 모르겠고, 그런 순간들이 지속되는 게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고, 확실한 건, 행복이 존재하든 말든 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멕시코에서 살면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1, 2학년 때,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어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하루 종일 일해야 먹고 사는데, 행복해요.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식탁 위의 얼마 안 되는 음식에 매우 감사하고, 태양이 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항상 웃어요. 그 사람들은 한 번도 한숨 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있어요?

많아요.

응답을 받은 적도 있어요?

예,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기도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세 가지 소원을 얘기해보세요.

가족과 친구들의 건강, 평생 함께할 여자, 헤어짐 없이. 그리고 명곡 하나 쓰는 것.

묘비명에 쓰고 싶은 말은?

Let me rest in peace. 평화롭게 쉬게 놔둬라. 냅둬라. 그때 가서 봐야겠지만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도 계속 평가받잖아요. 그냥 놔뒀으면 좋겠어요. 죽었잖아요.


글_ 황경신
사진_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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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ise

paper에 실린 타블로 씨 인터뷰 기사입니다. 6페이지 정도 실렸다고 해요.
paper는 초기에 무료 배부할 때 외에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지만,
최근엔 5000원에 판매된다죠?


꽤 심도있는 인터뷰라고 해서 저도 사서 읽을 생각이에요. ^^
황경신 씨의 문체가 마음에 드네요.
(그러고보니 타블로 씨가 추천한 책 중에서
황경신 씨의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도 있었던...)




아래 내용은 라디오 갤러리의 '고모님'이 올려주셨습니다.
일일이 타자쳐주신 고모님 감사합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캔본 출처 - 니힐 님의 블로그)

어느 특별한 오후에 대한 기록
타블로
비틀거리는 꿈이지만 _



우울하다.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슬프다. 세상에 떠도는 타인의 슬픔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꿈을 꾼다. 혹독하고 '비틀거리는 꿈이지만'
꿈을 꾸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기에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답 비슷한 것이라도 찾고 싶다. 내가 만난 <에픽하이>의
타블로, <꿈꾸는 라디오>의 타블로, 또는 인간 이선웅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알고 싶어요."

(중략)

사실 유명해지려고 방송에 나간 것도 있지 않아요?
사실 그랬어요.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나오
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될 때는 안 하는게 낫지 않나. 저도 재미없고 남
도 재미없으면. 제가 굳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 시간
에 곡을 만들거나 글을 쓰는 게 낫지. 제 지금 활동은 라디오, 음반작업하고 공
연, 그게 끝이에요. 저는 그게 좋아요

그것만으로도 바쁠 것 같은데요.
24시간 부족한 스케줄은 아닌데, 많은 것으로 채워지는 24시간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더 풍만하게 해서 24시간이 되는거니까, 훨씬 더 좋아
요. 예전에는 라디오 두 시간을 하러 가도, 앞뒤로 생각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이젠 스케줄의 여유를 만들어놓으니까 전후로 시간을 내서 준비할 수도 있고, 정
성을 들여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까. 곡을 만들 때도 그렇고. 그게 너무 좋아요.
돈은 못 벌더라도, 즐거워서 시작한 건데, 쫓기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라디오에서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하는 편인가요?
다는 못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하긴 해요. 라디오는 편집이 없어서 좋아요.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나요?
방송이 우울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제가 암울한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거든요

원래 우울하세요?
행복하진 않아요.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요.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웃음) 그런
데 듣는 사람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충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죠.

너무 우울해서? 비관적이어서?
예. 그런데 긍정적일 때도 많아요. 프로그램 이름이 <꿈꾸는 라디오>니까. 꿈
에 대해서는 한없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현실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게 우
리 방송의 특성이라, 현실 이야기를 하게 되면 좀 많이 우울하죠. 조울 방송이
라는 이야기, 들어요. 게스트가 있을 때는 즐겁고 밝은데, 처음 한 시간은 다
운되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가끔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게 저라
서, 컨트롤할 생각은 별로 없어요. 다듬기는 하되.

그게 타블로의 매력이잖아요.
매력이자 위험 부분이죠.


(초;방대한-_- 중략)


곧 서른이 되는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제 인생에 굉장히 큰 변화들이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에 일어날 거예요. 다
음 몇 년 동안 얘 뭐 하는거야? 미쳤나? 그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
라디오, 글 쓰는 것, 단편영화, 그런 일을 하면서, 욕할 거면 욕해라, 죽이고 싶
으면 죽여라,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정말 올바르고 필요한 것을 할 거다,
이런 마인드로 제 인생을 설계해나갈 생각이에요.

(후략)


글_ 황경신
사진_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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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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