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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5 철학 성향 테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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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뭐...예상한 대로입니다. ;;
 저는 꽤나 '머리형'인 사람이랍니다.
한 때, 저는 제가 굉장히 가슴이 따뜻한 '가슴형'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저의 워너비인 거였겠죠?)
근데 '애니어그램 테스트'라는 것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머리형'이 나오더군요.
저는 계산적인 인간인가봐요............

 

냉철한 엘리트
| 이성, 인식, 분석, 판단, 지성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당신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말[言]로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설득력을 가진 네고시에이터 타입! 아는 것이 힘이긴 한데, 일단 해봐야 알 수 있는 법. 세계는 변한다. 당연히 목적도 변할 수 있다. 단, 변할 때 변하더라도, 변화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는 법임을 믿는다. 변화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하지는 않는 당신. 강자에겐 약한 기질이 있어서 특정 순간에 사정없이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책도 주로 두꺼운 것만 쓰는 이 유형의 철학자들은? = 데카르트, 홉스, 헤겔, 베버
『철학 vs 철학』에서는?
5장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파스칼과 데카르트
6장 국가는 정당한 것인가? 홉스와 클라스트르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2장 무엇이 자본주의를 살아가게 하는가? 베버와 보드리야르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몰라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알 것이다. 이 말이 그렇게나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또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바로 앞 시대인 '근대'가 이 유명한 말을 통해 열렸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내가'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나의 존재라는 것은 철학적으로는 '주체'의 탄생을 의미하고, 역사적으로는 자연에 대한 인간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인터넷 검색창에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쳐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어쨌든 그는 철저한 '이성' 중심주의자였다. 시각, 청각 같은 감각은 잘못 보거나 잘못 들을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지만, 이성은 근본적으로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었다. 이 관점에 섰을 때, 정신지체장애인들이나 아동은 인간일까, 인간이 아닐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의 인간됨을 기초 짓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이었기 때문이다.
[관련된 책]
홉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는 명제가 현대의 정치체제를 낳았다? 무슨 소리일까? '사회계약설'의 강력한 근거가 되는 저 명제는, 권력이 어딘가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으면, 각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적으로 삼는 '투쟁' 상태가 지속되었으리라는 말이다. 따라서 인간은 보다 나은 '생존'을 위해 권력을 누군가에게 이양한다. 이것이 홉스의 사회계약론의 근간이다. 이것이 현대의 정치체제와 관련되는 이유는 현대의 정치체제도, 그리고 우리의 상식적인 정치 이해도 저 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는 이미 저명한 학자로 행세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영국 경험론이라고 불리는 사조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그의 인생은 '자연상태'에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혼란한 17세기의 정세 속에서도 90세까지 장수했고, 말년에는 유언장에까지 언급된 어린 반려자를 얻는다. 그가 이 부류의 철학자에 속한 이유는 그의 철학이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고기를 멀리하고, 폭식을 하지 않으며, 생애 내내 운동하길 멈추지 않았던 그의 성품 탓도 크다.
[관련된 책]
헤겔
이 사람을 "냉철한 엘리트 타입"으로 분류하는 데 적잖이 고민을 했다. 왜냐하면 헤겔은 '장대한 체계', '파도 같은 논리'라는 수사로 표현될 만큼 뜨거운 사유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官)과 굉장히 친밀했고, 경력의 거의 전부를 대학에서 보냈으며, 말년에는 그의 철학이 '국가철학'으로 불렸을 만큼 엘리트의 길을 고스란히 걸었으니 이 타입에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그도 젊어서는 꽤 고생을 했다. 어린 나이에 잘나가던 친구들(가령 천재 셸링)에 비해 자신은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 노릇이나 하고 있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절치부심한 그는 결국 교수 자리를 따내고, 교수직에 대한 첫번째 제안을 거절하며 조건을 더 좋게 만드는 수완을 발휘하기까지 한다(아이러니한 것은 그 자리가 예전에 스피노자가 학문의 자유, 종교에 대해 마음껏 발언할 권리를 내세우며 사양했던 자리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는 충분히 '엘리트'가 아니라, 상당히 심한 '엘리트'였다!!
[관련된 책]
베버
베버는 19세기 독일에서 태어난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이다. 그가 지은 책으로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서양 전통의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가 밀접한 연관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거두절미하고 생각해 보자.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그럼 기독교 윤리랑 거리가 먼 동양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을까? 여하튼 그런 논리에 따라 지배계급은 기독교를 대체할 수 있는 '유교 윤리'라는 가설을 만들어 냈다. 이 가설 때문에 금욕을 강요당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는 점을 잊지는 말자.
이 모든 문제를 그에게 돌릴 수는 없겠지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는 현대 사회학이 중요하게 여기는 각종 사회분석 이론과 개념적 장치들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법학, 역사, 정치, 경제 각 분야를 아우르는 그의 인식지평 속에서 현대 사회학이 탄생하였다.
[관련된 책]


논리적인 지성인
| 논리, 지성, 균형감각
이 타입의 사람들은 편견에 휩쓸리지 않는다. '천하의 도'란 치우치지 않고 사물의 이치를 온전히 파악하는데서 나오는 법이라 믿는다. 이들에겐 '무위'를 역설하는 자들은 '무위도식'을 하려는 자들, '정치'를 하려는 자들은 '사욕'에 몸을 망칠 자들일 뿐이다.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이 타입의 철학자들은 이성으로 천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스마트'한 사람들이다.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나가르주나, 혜시, 육구연
『철학 vs 철학』에서는?
5장 집착과 고통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가르주나와 바수반두
10장 동양 전통에서도 논리철학은 가능한가? 혜시와 공손룡
19장 인간을 초월한 이치[理]는 존재하는가? 육구연과 주희
혜시
지금까지도 중국 철학은 논리적이기보다 직관적인 사유 전통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통의 역사는 늘 ‘이단’의 역사도 함께 만드는 법이다. 중국 고대철학자 중 혜시의 철학에서 ‘신비’와 ‘직관’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 오히려 그의 철학은 모든 개별 사물의 구체성을 추상하고 추상해서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 하나의 ‘일자’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서양에서도 사변적이라고 취급되는 합리주의 철학과 포개어질 정도다. 이런 치밀한 논리를 구사한 그에게 어떻게 신비주의의 탈을 씌울 수 있겠는가! 철저히 생각하고,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는 혜시야말로 ‘논리적인 지성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관련된 책]
※ 혜시가 직접 저술한 책은 전해지지 않으나, 『장자』 천하편에 장자가 그의 논리를 자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있다.
나가르주나
나가르주나는 본래 남인도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북인도에서 일어나는 대승불교의 기본교리를 확립한다. 중국식으로 부르자면 '용수'(나가:용龍, 아가르주나 : 나무이름)이다. 유식불교의 대표적인 저서인 『중론』의 저자이다. 불교가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핵심 교리로 내세운다고 했을 때,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폐절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 원인이란 다름 아닌 집착이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을 통해 세상만물이 결국 공空하다는 논리를 편다. 누가 동양 사유에는 서양만큼 논리적인 사고가 없다고 하는가? 『중론』은 그 어떤 논리학 책보다 논리적이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모든 것, 집착하는 모든 것이 어째서 공空한 것인지 정교하고, 피해가기 힘든 논리로 논증해 낸다. 그리고 그 논증의 효과는 놀랍다!
[관련된 책]
육구연
육구연은 송나라 시대 이후 동아시아 철학계의 대스타였던 주희와 직접 논쟁을 벌였던 인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그는 당시 성리학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있었던 주희를 향해 거센 반론을 펼칠 정도였다. 그는 주희가 ‘태극도설’이라는 그림으로부터 생각해낸, 천지만물의 근원에 대한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러한 모습은 날선 비판가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양날의 칼과 같다. 육구연 자신은 철저한 맹자주의자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맹자를 하나의 도그마로 받아들였던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에서건 도식화된 이론은 강력한 논쟁의 무기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유연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결국 ‘논리적인 지성인’과 ‘신념의 비판가’, ‘도그마의 옹호자’는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관련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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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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