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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일기

1. 2006년에 헤어진 전 남친을 딱 4년만에 거리에서 마주쳤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말을 걸더라. 이름을 예전처럼 부르는데 참 기분이 묘했다. 대학 축제 때 헤어졌는데 대학 축제 때 그 학교 앞에서 다시 만나다니. 이거 뭔가 묘하잖아. 뭔가 더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콘서트 시간이 간당간당해서 콘서트 간다고 하고 헤어졌다. 혼자 간다는 걸 모르는 건 어쩐지 다행이라고 여겨졌고, 피차 혼자 길 가다가 만난 거라 참 다행이었다. 옆에 서로 다른 사람있었으면 더 기분 이상했겠지.

 

2. 이소라 콘서트는 너무 좋았다. 소라누님.ㅠ (왠지 유관순이 '누님'인 것처럼 소라 '누님'이 더 익숙하다.) 소라여신ㅠ  은혜롭구나.ㅠㅠㅠㅠ 갈까말까 고민 많이 했지만 스승의 날, 맘 고생 많이 하는 나 자신에게 이 정도 선물은 주어도 될 것 같다는 뒤늦은 결론을 내렸다.  노래도 너무 좋았고, '기도'랑 '믿음' 부를 땐 눈물이 주르륵.  고3 때 마음이 피폐한 시기에 자주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 시기에 들었던 곡 중에 엔리오 모리꼬네의 "Love affair piano solo"나 앙드레 가뇽의 음악도 있었다. 자주 가던 홈페이지의 배경음악이었는데, 지금도 들으면 여러 기억이 엄습해 울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시작 5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예매할 때 사이드 쪽 옆자리 한 자리가 남아있길래 당연히 나처럼 혼자 오는 여자겠거니 싶었는데... 남자 혼자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옆자리에 내가(=혼자 온 여자) 앉으니 내심 반가웠던 모양이다. 내가 앉으니 가방에서 조심스레 야광봉을 꺼내는 모습에 안 들키게 웃었다. 내내 차분했던, 그리고 누구도 그녀의 몰입을 방해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 콘서트의 특성상 그 야광봉은 끝내 쓸 일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말을 거셨는데, 커플 앉을까봐 조마조마했댄다. 나보다 2살 연하인 대학생이었는데 이것도 인연이지 싶어서 앞으로 이런 공연 있음 같이 가자고 했다. 끝나고 같이 밥도 먹었다. 혼자 콘서트를 가니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구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소소한 사건도 있었다. 이화여대 공연 때 꽃집에서 길을 잘못 가르쳐줘서 4곡을 부르고서야 콘서트장을 찾았던 남자분이, 화분을 들고 전주공연까지 오셨다. 그 분에게 마이크가 없었기 때문에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아마 그 꽃집에서 사과의 의미로 화분을 선물한 모양이었다. 무대 앞까지 나와 (그게 그녀가 가장 많이 움직인 순간이었다. 심지어 다시 앉아서는 한참이나 가쁜 숨을 고르기까지 했고.) 화분을 받아들고 들어가기까지 10분 남짓 이야기는 계속 됐다. 비록 그건 공연의 아주 짧은 부분에 불과했지만, 그런 흐트러짐이 왠지 인간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로즈데이라고 장미를 건넨 남자분도 있었다. "여자친구 주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물음에 "없으니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팬을 향해 "없는 게 낫죠? 그렇잖아요.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가 더 외롭잖아요."라고 차분히 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만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저건...정말이지. 삶의 가장 쓴 진실이다.

 전주라는 도시에 기억이 많다고 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예전 남자친구와 자주 전주에 놀러왔었고, 둘이서 강아지를 사가기도 했다고. 그런 의미부여 때문에, 그녀에게 좀 더 마음을 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분다"와 "청혼"으로 앵콜 무대까지 끝마칠 때까지 내내 비맞은 강아지처럼 웅크려 음악을 들었다. 오들오들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음악은 사실 숨겨놓은 상처를 다시 꺼내놓아 고통스럽지만, 힌편으로는 그런 상처가 있어 내가 인간답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부분에 그녀의 노래를 깊이 담아왔다. 그래서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앵콜 곡 때에 허락 받고 찍은 비루한 알현 인증샷)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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