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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4 행복론 - 최영미

행복론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고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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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최영미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어쩌면 행복이라는 건, 엄청나게 지루하고 하품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남이 닦아놓은 길로만 가고, 질문도 없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서도 안되고, 아무것도 배우지도 않는, 시를 쓰지도 읽지도 않는, 지난 일은 모두 잊고,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고 믿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확실히 이상하다. 행복은 저렇게 이상한 것이었던가 싶어서 생각이 헝클어진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잠시 머리속에 담아본다.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절대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저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묘한 설득력을 느낀다. 어쩌면 저렇게 어떤 식으로든 현실을 눈감아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심없는 밝은 미소같은 건 아이나 백치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의 끝은 또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나는 영영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이 생각을 어떻게 해야 떨쳐버릴 수가 있을까. 나는 때로 아주 유쾌한 사람이지만, 행복한 사람은 되지 못하리라. 하물며 저렇게 재미없는 "행복"은 싫다.

 같은 맥락에서 타블로의 말대로 세상의 많은 꿈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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