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악기 소리는 단연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인데,
데파페페는 내가 좋아하는 딱 그런 기타소리를 들려준다.

 
기타로 만들 수 있는 음악도 다양하지만,
데파페페는 그 중에서도 주로 유쾌하고 밝은 느낌의 곡을 전해준다.

 
이 음반을 듣고 있으면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청량하고 맑은 기분 좋은 이들의 음악은
아침에 일어나 눈뜰 때 듣고 싶은 음악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슬픔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가벼운 산책이나 조깅, 드라이브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잘 될 거야."라는 자기 암시를 걸기에 충분한 음악.
데파페페라는 기타 듀오는 그런 기쁨과 희망을 이 음반에 가득 담아둔 것 같다.

 

"자~~!! 출~발!" 이라는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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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판은 한달음에 책을 받아본 그 자리에서 읽었었는데 영문판은 언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공을 들여 읽게 됩니다. 그만큼 하나하나의 단어에 들인 정성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에요.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 구조임에도 타블로의 전공과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낯설고 이질적인 단어가 한 두개씩 포함되어있더라구요. 읽는 것이 이럴진데, 쓰는 사람이 들인 정성은 또 어땠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 역시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문장에는 결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먼저 영어로 썼던 작품이기 때문에 <당신의 조각들>이 가진 문장의 결은...이 영문판이 훨씬 자연스럽네요. 일부러 다듬거나 무너뜨리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 멋스럽습니다. 


 왜 그의 에세이와 단편들이 교수님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비록 제가 그 문화권에서 그 언어를 직접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어를 운용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한국어판 <당신의 조각들>을 읽고, "역시 부풀려진 명성"이라고 결론지었던 주변의 지인에게 영문판을 권하고 싶어지네요.

  디자인면에서도 저번 한국어판에서 범했던 사소한 실수들이 모두 해결된 것 같아 더욱 흡족합니다. 소설의 분위기와 다소 겉돌던 밝은색 표지에서 검정색 표지로,(재질 때문에 쉽게 더러워질 것 같지만요.) 읽기의 흐름을 방해하던 컬러풀한 사진에서 단색의 그림으로 바뀐 것도 마음에 듭니다. 단편의 중간에 그림이 들어가있지 않은 것도 좋고요. 독자들의 피드백이 충분히 반영된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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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난 좀 삐딱한 인간인가 보다. 많은 이가 좋다고 말했던 이 책, 동양 제일의 작가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이 책에 대해 감히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과연 카프카는 성장했느냐고. 그의 선택과 자유의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가운데서 시작된다."(상권 p.256)
라고  이 책은 말한다. 내가 삐딱한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해서 일까?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의 생에는 수많은 메타포가 숨겨져 있다.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설정들은 메타포일 것이다. 아버지는 "외계인"에 비유되고 있다. 나카타 상은 미스테리한 사건 후에 "빈 공간"으로 일생을 살았다.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저주" 받았다. 사에키상은 "소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야기 흐름의 큰 줄기만을 보자면 거의 모든 것은 카프카의 아버지가 의도한 대로 돌아가고 있다. 결말만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았지만. 결국 카프카는 예정되어 있던 존재였고, 모든 일은 준비되어 있었던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차 없이, 치밀하게. '터프하게' (나는 이 단어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 좀 우습게 여겨졌지만) 성장해나간다는 소년은 매우 미묘한 지점에 미묘한 포즈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자의적으로 한 행동들은 결국 모두 예정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예정된 저주를 빠르게 해치우는 것에  더 관심이 있어보인다. 운명과 맞서 싸우거나 대응하는 대신에.


 분명히 이 소설은 흥미롭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전의 인용구들도 그랬고, 번갈아 진행되는 이야기가 하나의 접점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도 그랬다. 미스테리어스한 여러가지 소재들도 그러했다.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나카타상이 겪은 의문의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도, 조니 워커가 왜 그 마을에 들어가려고 하는지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에키상과 딸이 왜 헤어졌는지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쿠라가 카프카의 누나인지 아닌지도 설명해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설명이 부족한 채 끝을 맺은 이유는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그 "마을"과 동일한 의미선상(이 소설의 용어로 치자면 '메타포')에 이 소설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작가는 설명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카프카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신비하고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만 점철되어 있다. 선택의 지점은 매우 좁았다. 성장'한' 것인지, 성장'당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오히려 바보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나카타 상 쪽이 더욱 성장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모든 사태의 예정된 운명에 대항한 것은 오히려 그가 아닌가. 아니면 얼떨결에 합류한 호시노라든지. 카프카가 아버지의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 한 일은 집을 떠나온 일 외에는 고작 삼림욕과 독서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헷갈리는 것이다. 결국 카프카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긴 했겠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성장'의 의미와는 꽤나 다른 것이라서. '질 것이 뻔한 싸움(운명에 대항하는 싸움)이라도 끝까지 맞서 싸우는 중에 인간은 성장한다.'라는 내 생각이 고루한 것이라면 더이상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흥미로운 소설이라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미묘한 일이다.



p.s.
흥미로운 관련 포스팅이 있어서 링크합니다~
해변의 카프카 한국판 가상 캐스팅 - http://blog.naver.com/nonameone/70037550556
(호시노 역에 특히 주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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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I'm scared, Dad."
아빠, 저 떨고 있는 것 같아요.

"That's okay, son. We're all scared."
괜찮다, 빌리. 우리 모두 겁내고 있어.



남들이 다 본 영화 나중에 보고 감동받는 건,
아무래도 좀 촌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요.ㅠ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늘 서로를 보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와 아들이
시선을 부딪히는 저 장면, 저 대사.

아, 너무 멋지잖아.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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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두고 생각나는 노래'가 명반의 기준이라면, 이 음반은 '명반'으로 분류해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음반이 출시되었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이 음반은 19세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은 음반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음반을 들은 영향으로 불량 청소년이 된 것도 아니요, 말끝마다 욕을 지껄이는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니 '19세미만 청취불가'라는 판정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DJ DOC의 앨범이 진한 반항의 색을 띄고 있는 것은 언제나 그랬지만, 특히 5집에서 그런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속시원하게 퍼부어대는 음반을 처음 들어봤던 그 때,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요. 금지된 비속어와 욕설이 가사의 태반을 차지하는 'L.I.E.'나 '포조리'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아, 노래에서 이런 종류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노래방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면 친구들이 의아하게 쳐다보기도 했어요. 어찌됐건 모범생 축에 끼는 제가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에요.

 그런가하면 '기다리고 있어'나 '비애', '사랑을 아직도 난' 같은 곡은 '반항아'의 색을 쏙 뺀, 아주 멋진 사랑 노래에요. 이들에게 이런 감성이 있구나 싶어 놀랐던 곡들이구요. 2000년에 나왔던 이 앨범에 실린 노래들이 2008년 지금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는 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찾아보니 당시 60만장이 판매되었다고 하네요.) 전 비가 내리는 날은 '비애'라는 노래가 아직도 떠올라요.  이 앨범이 이런 사랑 노래를 많이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힙합팬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좀 놀랍기도 한데요. 요새는 힙합하는 사람이 사랑노래를 부르면 '뭐하는 짓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왕왕 있으니까요.(;;) 그래도 결국 곡이 좋으면 인정받는 거겠지요. 

  당시에 테이프로 사서, 정말 늘어날 만큼 많이 들었던 이 앨범이 문득 문득 생각나서, 얼마전 CD로 다시 구매했습니다. 좋은 앨범이에요. 요즘은 예능 프로에서 DJ DOC 멤버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예전에 비해서 많이 행동이나 말투가 유연해진 느낌입니다만, 이 앨범을 들으면 그분들도 옛모습을 만나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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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에서 '앵콜요청금지'를 처음 들었을 때, 심장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밴드의 이름을 처음 듣고 사실 좀 웃었었다. 노래 제목도 '앵콜요청금지'라니. 유머가 있는 밴드라고 생각했다. 펑크밴드인가하는 예상도 했었다. 그런데 노래에는 그런 장난기가 없었다. 기교 없이 부르는 노래, 화려한 수식 없는 노랫말, 복잡하지 않은 멜로디들이 귀와 마음을 더 빼앗아버렸다. 오히려 단순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단순함은 대학시절의 열정같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안되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만' 아마 앵콜을 요청하지 말아달라는 이 노랫말에서, 자신의 끝나버린 사랑을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속성. 지나고 나면 끝이 확실하여,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 이런저런 추억이 떠올라 쓸쓸해지고 말았다.

 '앵콜요청금지'가 실려있던 이들의 EP앨범 이후로 긴 시간이 흘러 드디어 1집이 나왔다. 1집의 타이틀곡은 '보편적인 노래'이다. 사랑노래이고, 아주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가사도 이렇다.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그렇다. 사실, 평범하고 뻔한 사랑 노래처럼 오래 기억되는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그런 사랑으로 오래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노래이고, 사랑이 끝난 자리에 빈 손으로 서서 부를 법한 노래다. 피아노와 기타가 딱 필요한 만큼의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1집 앨범이고, 이들의 앨범이 대체적으로 '아마추어리즘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의 노래에서 이지형이나 언니네 이발관이 떠오르기도 한다. 앨범이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밴드 멤버들의 사정으로 활동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들었다. (무기한 활동 중단 상태라고 한다.) 대부분의 멤버가 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회사원)이라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하긴 EP 앨범을 냈을 때도, 신촌과 홍대의 단 두 곳에서만 레코드를 판매했지만 이런 구석진 동네에 사는 나에게까지 소문이 났던 걸 생각하면 이들에게 활동을 하고 안 하고가 뭐 대수랴 싶긴 하다. 중요한 것은 2008년이 가기 전에 좋은 앨범이 또 하나 나왔다는 것이다.



p.s.
1. 여담이지만...밴드 이름 후보작으로 "저 여자 눈 좀 봐", "엄마 쟤 흙먹어"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후후 

2. 김작가 님의 블로그에서 '보편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쓴 것보다 훨씬 나은 리뷰이니 읽어들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
http://zakka.egloos.com/4008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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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Yes24)



 상상력은 비극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인간은 오랫동안 비극을 사랑해왔다. 또, 어떤 이는 비극이 희극보다 예술적으로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내용을 후학들이 글로 남긴 <시학(詩學)>이라는 책은 시에 대해 다루면서, 특히 비극만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희극에 대한 내용이 담긴 2부가 있었으리라 예상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희극은 윤리학적으로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비극을 만들어내고, 비극에 매혹되는 이유를 아주 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의 말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라는. 이 두 가지 말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면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제시하여야 하며, 그 안에 실제 이상의 선인을 등장시켜야 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문학관은 현대 소설인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문학의 장르가 지금처럼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학>에서는 필연적으로 서사시, 비극, 희극, 송시, 드라마, 찬가, 풍자시 만이 디뤄지고 있다.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발생한 문학 장르인 소설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여지없이 통하고 있다. 적어도 이 소설을 볼 때는. 



 인간이 생각해내는 여러가지 비극 중에서 '지구의 종말'이라는 주제는 그리 참신한 주제는 아니다. 이미 태어나고 죽은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고, 각각의 상상력을 구체화한 시와 소설과 그림과 영화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끔은 예술가가 아닌 우리같은 이들도 이 문제에 깊이 빠져들 정도이니 이 주제가 닳고 닳은 주제임은 분명하다. 물론 과거보다는 현재가 그런 일이 일어날 개연성이 더 높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환경문제나 자원고갈, 핵무기 등으로 인해서)  하지만 우리는 주제가 같다고 해서 그 모든 작품들을 똑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플롯, 어조(혹은 문체), 표현의 방식, 작가의 태도나 세계관 등 많은 변수들이 이 문제를 실체화하는데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로드>는 아주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 땅은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모든 식물과 동물이 죽었다. 전기도 끊겼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나마 남아있는 가공식품과 물, 옷가지, 석유 등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기본적으로 반응하는 인간만이 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어째서 인간이 그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으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역설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주 바람직하고 착한 이 소설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살아남은 자들 역시, 목숨을 이어가는 이유는 똑같이 '희망'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른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 서로가 그리는 '다른 미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따르기라도 하는 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희망적인 시대에는 한 순간도 살아본 적 없는 아들이 더욱 그렇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아버지에게서 전설처럼 전해들은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추하는 어린 아이. 작가가 성선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가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반면 윤리와 도덕을 버린 자들이 그리는 사회는 그저 배고픔이 사라지는 사회이고, 육체적 괴로움이 사라지는 사회일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이들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가름한다.


 소설은 <로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정 형식으로 되어있다. 나그네로 떠도는 주인공들은 수많은 절망을 목격하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기적처럼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하고, 다시 굶주리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아이의 순수가 아버지를 구원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목숨이 아들을 살리기도 한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몇 장 남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지 조바심이 나면서도, 나처럼 다음 장으로 넘기기에는 두려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소설은 비극이고,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답게 사는 것과, 그저 사는 것과의 차이. 우리는 이 개연성있는 비극이 현실로 닥치기 전에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코맥 매카시는 우리에게 바로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여정을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소설에서 발견하길 바랐을 것이다.






p.s.
비슷한 주제의 소설을 추천한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영화로는 '배틀 로얄'과 '우주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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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ZM (http://www.izm.co.kr/)




 공감이 가는 바가 있어서 담아왔다. 친한 친구 중에 빅뱅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고, 스스로도 데뷔전부터 빅뱅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태양의 솔로 앨범 이후에 그들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새롭지가 않다. 일년내내 활동을 시키는 기획사도 가혹하지 싶다. 기획사에 그렇게 그들을 쉴새없이 활동시켜야할 어떤 경제적인 사정이 있는 건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고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들이 가수로서, 어떤 음악을 하느냐만 보여질 뿐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곡을 들어보고는 그들이 다시 가닥을 잡았나했는데 다시 한국 앨범에서는 하던 음악을 되풀이하는 느낌이다. 빅뱅 멤버들이나 기획사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음악이 지루해져가고 있다는 걸. 그저 그런 그룹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부디 다음 앨범(미니앨범이든 뭐든)이 나오기 전에는 충분히 휴식하면서 재충전을 하고, 이런 나의 노파심 따위를 비웃으며 힘차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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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드디어 책이 도착했다. 책의 내지에 있는 친필메시지(인쇄본일망정)의 마지막 두 줄때문에 책을 읽기도 전에 찡해졌다. 지금 막 책을 다 읽었다. 생각들을 엮어 글을 남긴다. 책에 대한 리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지껄인 후에...좀 더 세세한 리뷰는 다음번에 남기련다. (사실 요즘은 내게 책을 읽기에 좋은 시기가 결코 아니다. 중요한 시험이 코앞인데,  자꾸 현실도피를 하고 있다. )


 이것은 그가 본 타인의 조각들이면서 동시에 그의 조각들이다. 아프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타블로가 감내하고 살아온 슬픔의 뿌리가 생각보다 더욱 거대하고 깊다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는 동안 내 늪 속 깊숙히 가라앉혀 두었던 슬픈 기억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물밑의 검고 불쾌한 먼지가 함께 휘날려 마음이 산란하다. 아마 이것들이 한동안 내 발목을 무겁게 붙들고, 자려고 누우면 끝없이 땅속으로 나를 끌어당길 것이 분명하다. 요즘 나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서야 비로소 잠든다. 소리가 없는 세상이 불안하다. 취침예약, 30분. 오늘은 몇 번의 30분을 거쳐야 잠들 수 있을까.


 슬픔과 고통은 치유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가 답일 수도 있다. 어떤 것도 완벽하게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하더라. 그리 오래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짧지도 않았던 생을 돌아보면 그랬다. 음악도, 글도, 따뜻한 대화도, 포옹도, 잠시의 안식 후에는 허했다. 허무했다. 어쩌면 내가 지독한 매저키스트라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것인가도 생각했더랬다. 슬프지 않으면 불안했다. 기쁠 때면 이번이 내 생에 허락된 마지막 기쁨은 아닐까 두려웠다. 즐거운 일 앞에 몸을 숙였다. 왜 그런 고귀한 것이 내게까지 왔는지 송구스러웠으니까. 그래도 음악을 들었고,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난 그런 방법 밖에 몰랐다.


 대답이 없는 것들을 사랑하며 약간의 위안을 얻는 삶이 반복된다. 그는 아마 계속 음악을 만들고,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안 그러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을 테니까. 같은 이유로 나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갈구하고, 누군가의 글을 맹렬히 읽어나가고, 하찮고 가치없을 망정 몇 줄의 글을 쓰며 매일을 살아갈 것이다.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내 몫의 조각을 지나온 골목 어딘가에 떨어뜨리고 온 것은 아닐까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크고 작은 것에 슬퍼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면서, 휘적휘적 술에 취해 걷기도 하면서, 그렇게 . 




2. 조금은 객관적인 감상

 책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단어가 한 군데, 큰따옴표 한 군데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쇄에서는 이러한 점을 시정해주었으면 좋겠다.

  타블로는 사실 그의 현위치를 보면 주류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조금 알고 보면, 그의 성향은 상당히 비주류적이기 때문에 이 책의 이런 편집과 구성은 좀 의외였다. 너무 트렌디했다. 사진이 몰입을 방해한다. 사진은 단편과 단편 사이에만 넣거나, 아니면 차라리 단 몇 장의 삽화가 나을 뻔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한다. 얼핏 책의 분량을 맞추려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께와 분량과 모양새와 가격을 떠나서 그의 "소설"을 읽고 싶었던 것인데 요즘 책들은 포장에 너무 신경을 쓴다. 이걸 저자나 출판사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잘 포장된 책을 사는 이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 문제일 것이다. 심지어는 내용이 어떻든 간에.) 

 
 문장에 대해서는 "안단테"의 경우 문단과 문단, 문장과 문장 사이가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서로 독방에 격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영어 원문을 번역하다가 생긴 문제인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의도된 문체인 것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첫 작품인 "안단테"가 불편했고,  책 전체가 그런가 했더니 또 이후의 작품은 괜찮았다. "쉿"이나 "쥐", "최후의 일격" 등의 작품들은 상상력과 작품의 구조와 문장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유명한 가수이기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순수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감히 이야기하자면,  그런 독자들을 매료시킬 만큼의 질은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순수문학만을 읽는 사람들의 일부도 이 소설에 '괜찮다'는 평을 내릴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다음에 또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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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았다. 1987년에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를 21년만에야 보다니 나란 인간은 참 게으르고 늦다. 거친 흑백톤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충분히 옛날 영화처럼 보였다. 무채색의 롱코트를 입고 꽁지머리를 묶고 거리를 배회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좀 낯설었다. 그들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연민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권태로워보이기도 했다. 죽지않는 영원을 소유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태.

  천사들도 때론 농담을 한다. 그들은 피부와 손가락에 닿는 물건의 느낌과 커피의 맛과 여인의 귀와 목선에 흥분하는 모습에 대한 농담을 한다. 농담이라는 것은 대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에서 유발된다. 즉,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스운 것이다. 그들은 농담을 하고, 웃는다. 하지만 그 농담에는 진심이 들어있다.   

  어떤 천사는 거듭하여 꿈꾸다가 꿈꾸던 것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가 얻은 것이라곤 발자국 정도일 뿐일지라도 그는 행복하다. 사람들의 마음이 읽히지 않고, 아무것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야하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다. 그는 그가 꿈꾸던 방식대로 의미있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호메로스는 잊혀진 이야기꾼이지만, 인간의 이야기는 결국 비슷한 테마를 가지고 반복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완벽히 잊혀지진 않을 것이다. 쉽게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믿는 것, 어느 순간 의미있는 타인과 만나는 것,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절망에서 사랑으로 옮겨가는 것. 이 세 가지는 살아있는 한 붙잡아야할 슬픈 희망일테니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살아 숨쉰다는 게 한층 고맙게 느껴진다. 나의 절망을 위로해주는 천사도 지금 내 곁에 있을까. 누군가가 갈망했던 삶을 너무 쉽게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도 함께 하게 된다. 오래 곱씹어야할 영화이다.




(감상을 수정하여 갱신했습니다.)





  +
 
타블로의 노래에서
언제나 반복되는 구절
"Faith, Destiny, Love"과 너무나 닮아있는 영화.



이 영화와 관련있는 에픽하이의 노래 Paris,  이터널모닝의 White





Paris는 노래의 설정 자체가 닮아있다.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인간이 만나 순수한 사랑을 한다는 것.







이터널 모닝의 타이틀곡인 White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OST로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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