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이경란 기자|이영목 기자|2008.11.10 09:42 입력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본명 이선웅·28)가 지난 4일 펴낸 첫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 주간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당신의 조각들'은 미국 스탠퍼드대 창작문예학과와 동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한 타블로가 재학 당시 썼던 단편 소설을 모아 엮었다.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뉴욕·샌프란시스코·시카고 등지에서 쓴 글을 뒤늦게 펴낸 셈이다. 책이 출간된 지난 4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작가' 타블로를 만났다. 책 마무리 작업에 지쳤는지 과로로 병원 응급실을 다녀온 길이었다.

"번역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이젠 한글로 쓰려구요.(웃음) 마지막 2주는 끙끙 앓으며 마무리 작업을 했거든요. 번역 하는 내내 국어사전을 안고 살았는데, 덕분에 몰랐던 한자어를 배워서 우리말 많이 늘었습니다. 에픽하이 멤버들이 놀랄 정도로요."

예전 글을 번역하며 타블로는 십 년 전의 '이선웅'을 만났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성숙해졌고, 글을 보면서 미숙한 점도 느꼈지만 지금의 타블로가 건드리면 안될 것 같아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어요. 당시의 글을 보면서 '그때 난 왜 이렇게 슬프고 외로웠을까'란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뭉개져버린 가족사를 담은 '안단테'와 '최후의 일격', 영화감독 꿈을 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며 배우지망생과 하룻밤을 보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쥐'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결핍됐거나 나약한 존재들이다. 타블로는 "당시 내 자신의 내면이 그런 글을 쓸 수 밖에 없을 만큼 외롭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은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이지만 외로움과 치열하게 싸웠고 대학 졸업 전 1년은 조울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 그냥 늘 태초부터 외로웠던 것 같아요. 감정이 아주 예민하게 타고나기도 한 것 같고, 어려서 너무 자주 다닌 이사도 한 몫 했죠. 인도네시아·홍콩·스위스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인종 차별도 많이 겪었어요. 어려선 집단구타도 당했고….

친구를 많이 사귈 수도 없었죠. 대학 진학을 앞두곤 부모님과 진로 문제로 심하게 부딪혀 갈등이 많았어요. 영화학과에 입학했는데 반대하셔셔 맞기도 많이 맞았고…. 대학을 다니는 것조차 견딜수가 없었는데, 진학 후 가장 친한 친구가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죠. 이후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고만 치고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제 소설 속엔 착한 캐릭터가 아무도 없어요."

글쓰기는 혼란스럽던 타블로에게 탈출구였다. "글을 쓰는 순간, 책에 빠진 순간엔 현실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대학 시절 에세이와 논문을 닥치는대로 썼어요. 그 글들은 절대로 책으로 못낼 거예요.너무 난해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읽기 힘든 글들이죠."

타블로의 글은 그의 평소 말투처럼 다소 무미건조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고,꾸밈없는 욕설도 등장한다. 인기를 고려했다면 걸러냈을 만한 내용들도 있다.

"우리 사는게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냥 걸러내지 않고 모두 그대로 사진을 옮기듯 담았어요. 전 글을 쓸 때 형용사를 최대한 자제합니다. 글을 다 써놓고 형용사들을 다 지워내고 뼈만 남기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대학 때 교수님들이 제 글을 좋아해주셨어요. 형용사는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전 음악도 그렇고 꾸미는데는 소질이 없어요."

어려서부터 활자중독증에 걸린 듯 뭔가를 읽기에 집착했던 타블로는 초등학교 시절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에 빠져 비슷한 글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이후 글쓰기 대회에서 다수 수상 경력이 있었고, 고교시절엔 외국인 학교에 다니면서 교내 문학잡지를 출간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인터넷에 연재 소설을 썼다가 퇴학 당할 뻔 했을 만큼 어려서부터 창작욕은 왕성했다.

이런 그가 음악에 빠진 것은 할렘에 머물면서다. 할렘에 거주했던 그는 흑인들의 랩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시와 랩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거리에서 랩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시가 이렇게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이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시와 랩이 비슷한 문학이라고 느꼈어요. "

뉴욕에서 영화 조감독을 하다 우연히 만난 국내 음반 관계자가 타블로가 만든 노래를 들은 후 음반 발매를 제의하며 에픽하이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교수님들은 바로 작가로 활동을 하라고 권유했는데 잠시라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단 생각에 음악을 했죠. 그런데 데뷔 전에 2년, 또 데뷔하고 2년을 아예 무명 가수로 지내면서 오기가 생겼죠. 끝까지 가야겠다는…."

인기를 얻고 에픽하이로 5년을 쉼없이 달렸다. 오랜만의 소설 작업은 그에게 현재를 돌아볼 시간을 줬다. "그냥 쉼없이 달려왔는데 10년 전에 써놓은 글들을 번역하면서 많은 걸 생각했죠. 시간이 지나도 제 자신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20대를 마무리를 하는 지금도 여전히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고, 꿈을 잃고 살게 될까바 무서워하죠. 또 내가 맞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타블로는 인터뷰를 할 때면 '음악과 글쓰기를 통해 내가 살아 있다'는 말을 자주해 왔다. 장르가 다른 문화 활동인 음악과 글쓰기는 그에겐 별로 다르지 않은 문화활동이다. 그는 문학을 랩으로 노래했고, 노래를 문학으로 옮겨왔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깔도 역할도 다른 것 같아요. 누군 섹시하고 또 누군 정말 멋지고, 수퍼스타이고.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을 주는 것, 그것 뿐이죠. '꿈이 작고 하찮더라도, 또 사회적으로 보기에 어긋나고 빗나간 사람이라도 괜찮다, 우리도 당신들 처럼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좀 덜 아팠으면 덜 외로웠으면,, 그리고 무모한 꿈이라도 꿀 수 있길 바랍니다."

이경란 기자 [ran@joongang.co.kr]
사진=이영목 기자 [ymlee@joongang.co.kr]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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