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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읽은 책에 대해, 이제와서 감상을 적는다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한 일이다. 어떤 리뷰를 쓴들 그 소설 자체보다 그 소설을 더 잘 이해하게 할 수는 없다. 언어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는 부족한 나의 능력에 대한 약간의 변명도 얼마간 포함되어 있지만.


 그냥 짧게 적고 싶다. 개츠비는 로맨티스트였으며, 로맨티스트이기 때문에 위대했다.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위대하지 못한 이유는 낭만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도,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닉이거나, 데이지이거나, 톰이거나, 조단일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나쁘거나.


 산업시대의 어떤 시점을 분기로하여 우리는 사랑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잃어왔다. 그러나 개츠비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렇게 했다. 그가 가진 위대함은 그것이 전부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그래도 그런 사랑이 이 세상 어디엔가  다만 한 조각이나마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식의, 가늘게 팔딱이는 어린 새의 심장같은 연약한, 그러나 살아있는 희망을 남겼다.


아직도 먼 불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사랑을 지탱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은 남아있을까? 어쩌면, 당신을 사랑할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오늘 하루쯤은 침실의 불을 끄지 않고 잠드는 것이 낭만일 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작년 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만해도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를테면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균일해지고 또한 영원히 일종의 정신적 주의력을 기울여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말하자면 나는 특권이라도 부여받은 듯한 눈빛으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요란한 유람이나 답사 같은 것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개츠비 한 사람, 이 책에 이름을 부여한 그 한 사람만이 나의 반발을 벗어나는 예외였다 - 개츠비는 내가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만일 끊임없이 연출되는 연기의 총체를 개성이라 한다면, 그에게는 무엇인가 현란한 개성이 있었다. 즉, 인생의 장래에 대한 어떤 고양된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1만 마일 밖에서 발생한 지진까지도 기록할 수 있는 복잡한 기계와 연관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려지는 그 무기력한 감수성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 그것은 희망을 갖는 탁월한 재능이며, 낭만적인 준비와도 같은 것인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는 일찍이 발견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다시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그렇다. 결국 개츠비가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내가 사람들의 절망적인 슬픔이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대한 나의 관심을 잠시나마 차단시켰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을 뒤따라 떠돌았던 더러운 먼지때문이었다.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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