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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그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쫓아서 계속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어렸을 때 9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운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건모 형 앨범에 작사한 곡을 준 게 처음 시작이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음악 만드는 일에 흠뻑 빠져버렸다. 음악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서 집에 녹음기를 갖다 놓고 피아노 연주를 하고, 테이프에 다시 옮겨 담으면서 혼자 요란을 떨었다. 글을 쓰던 학생이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노래를 잘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가창력 제로다. 멜로디 감각이나 느낌은 진짜 좋은데 정작 내 목소리는 그걸 소화할 수 있는 도구가 못 된다. 바이올린이 첼로 소리를 낼 수 없듯이. 그제서야 랩이 바로 내 바이올린 목소리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와 랩이 닮은 것도 맘에 들었다. 대학에서 언더그라운드 그룹을 만들고, 뉴욕 할렘에서 랩 배틀하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형편없는 실력이었지만,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은 분명 그때의 열정이라 할 수 있다.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 어느 날 보니, 나도 모르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됐다. 처음에는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랬으니까 대학원 졸업하고 다 버리고 온 거다. 음악만 하고 싶어서. 1집을 냈을 때 돈을 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힙합이라는 장르 때문이기도 하고, 1집이 대중들에게 아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돈을 못 버는 거구나, 내가 하고 싶은 거 그냥 하는 거구나’ 그러면서 음악만 생각했다. 2집 ‘평화의 날’이란 곡을 만들었을 때는 힙합 마니아들이 “얘네들 뭐하는 거야? 힙합하다가 갑자기 이게 뭐야?” 그랬다. 비트가 빠른 일렉트로니카 같은 음악을 하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돈 못 버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생각했으니까. 뭐하려고 가오 잡나? 그런데 1집 때랑 똑같이 활동했을 뿐인데 2집이 잘 됐다. 방송이나 오락 프로그램에 전혀 출연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오락 프로에 나와서 뜬 다음 에픽하이가 잘 됐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에픽하이가 주목받기 전까지는 방송 출연 한 번 못해봤다. ‘평화의 날’ 덕분에 어느 정도 팬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돈은 벌지 못했다. 방송을 하다 보면 우리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아지겠지 싶어 기회 한 번 잡으니까 또 섭외가 들어와 MC를 하고, 다음번에는 DJ가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시트콤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내가 인기 있는지도 몰랐다.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3집이 나오고서야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1위를 하면서 어느 날 보니,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 그건 정말 감사해야 할 축복이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지’라는 생각은 지금도 없다. 틈틈이 쓴 내 글을 가지고 책을 내자는 수많은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핑계 대면서 광고 촬영도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큰 액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이미지에 맞지 않는데, 그 상품 팔아주는 사람이 되려고 내가 뭘하는 거지?’ 그런 결정을 반복하다 보니까 방송 활동도 쉬고 싶어져서 지난 6개월 동안은 라디오(FM4U 친한 친구)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 주위 사람들은 “대박 터졌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해?”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음반 활동이 끝나면 모든 활동이 끝나야 된다. 좋은 음악 만들려고 쉬는 거고, 9월에 4집 앨범이 나오면 또다시 음악을 위해 방송도 하겠지만 그게 내 전부가 되는 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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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람 이런 말 하면 지금까지 에픽하이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사실 3집까지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머리로 한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런 것을 담아야지’ 나도 모르게 조금씩 계산하면서 말이다. 이제 곧 4집 녹음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 음악은 진짜 마음으로 음악을 만든 것 같다. 사운드 자체나 멜로디가 많이 성숙해졌고, 가사도 솔직하게 썼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느끼는 대로 쓰다 보니 우울한 곡들이 많다. 생각해봤는데 그런 곡들이 계속 나오는 건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는 거다. 물론 사람들이 가진 타블로의 캐릭터처럼 장난기 많고 밝은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울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전할 수 있는 것은 우울함이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하려면 가슴 아픈 걸 해야 할 것 같다. (사진 촬영을 해준 코요태 백성현의 방 한쪽을 장식한 사진들을 가리키며) 저기 수십 장의 사진이 있어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굉장히 슬프거나 고독함을 담은 사진이고, 음악을 들어도 슬픈 멜로디와 가사 한마디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게 나인 것 같다. 힘들어할 때 다가와 해주는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기억되고, 그 순간을 함께해준 친구가 평생 가는 것처럼 슬픈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인 것 같다.

첫 단편 소설 andante
대학교 1학년 가을에 쓴 게 ‘안단테’이고 이것 말고도 써놓은 게 아주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글 쓰기를 잠시 미뤘었는데 내년쯤 단편 소설 모음집을 내려고 쉬는 틈틈이 쓰고 있다. 내용은 에픽하이 음악을 닮았다. 타이틀곡들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 노래를 밝고 희망찬 건장한 청년들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몇 곡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우울하다. 사람들의 사는 얘기를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우울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건데 내 단편 소설도 대부분 그렇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안단테’가 책의 첫 스토리로 들어갈 것이다. 방송이랑 시트콤을 하고 있을 때 책을 내지 않았던 건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이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어, 타블로 잘 나가니까 책까지 냈네”라는 오해를 사는 것도 싫고, 유명세 때문에 책이 팔리는 것도 싫다. 꼬마 때부터 20년 동안 글을 써왔고, 사실 음악도 글 쓰는 마인드로 하는 거다.

나를 설명하는 모든 것 영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가출하기도 했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영화나 음악, 글이나 사진, 그림이 모두 똑같다. 나를 정말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문화,예술이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은 다 좋아하고, 그 밖에 있는 것은 모두 관심 없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문화,예술로 설명했으면 좋겠고, 정치로 파워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누르는 것보다 문화로 사람들의 리스펙트를 얻어서 그 사람들과 파워를 나누는 게 더 좋다. 누군가는 어리석다고 말하겠지만 그게 바로 나다. 그림 잘 그려서 티셔츠 디자인도 하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옛날부터 옆에서 지켜봐왔는데 그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자극이 된다. 같이 랩을 하는 친구지만 개코가 그림 그릴 때가 내 눈엔 가장 아름답고, 빽가도 같은 가수지만 사진 찍는 모습을 볼 때가 너무 좋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친구들 사실 처음에 빽가를 만났을 때는 어떤 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쾌하고 춤 잘 추는 아이라는 것 말고는. 그런데 친해지고 보니 얘가 방송국 밖에서는 완전히 다른 존재더라. 지금 이 방을 봐도 알겠지만 사진에 미쳐 있다. 빽가가 얼마나 사진을 사랑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난 그를 우리나라의 마지막 보헤미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랑 몇 명만이 아는 빽가의 모습이 있는데, 그게 너무 좋다. 넬, 이정과도 굉장히 친하고, 클래지콰이 멤버들이랑 거미도 있다. 인기 많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인기와 무관하게 재능 있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어렸을 때는 그랬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조건에 관심 없다. 사람이 좋으면 좋은 거다. 여자를 만날 때도 주위에서 아니라고 말려도, 그 사람이 나에게 아름다워 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에디터 : 팽윤주
- 헤어 & 메이크업 : 장은삼(Ra Beauty Core)
- 스타일리스트 : 김봉법
- 자세한 내용은 <보그 걸> 9월호에서 확인하세요!
- 출처 ㅣ www.voguegirl.com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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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2 12:18

    비밀댓글입니다

    • 2008.07.02 12:33 신고

      수많은 인터뷰 기사가 있지만, 진심에 접근하는 인터뷰는 적잖아요.
      그래도 이런 인터뷰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힙플은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자유로워서 좋고,
      이런 여성취향의 잡지에서는 정서에 치중하는 것 같더라구요.
      특색있는 인터뷰들 덕에 읽는 이도 즐겁네요.^^

  2. 2008.07.03 00:06

    비밀댓글입니다

    • 2008.07.03 08:36 신고

      디시인사이드에 넬 인터뷰가 있는 것도 의외죠.ㅋㅋㅋ
      안 읽어본 인터뷰였는데 덕분에 잘 봤어요.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