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의 타블로

편견이 없다면, 세상이 재미있을까



사람들은 묻는다 ‘객석’ 기자니까 클래식 음악만 듣겠네요. 꼭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 편이라 ‘그렇지만은 않아요’, 얌전하게 대답하고 상황 종료한다. 온 몸이 간질간질해지는 발라드부터, 터질 듯 내달리는 힙합까지...잡식동물 같은 나의 음악 취향을 설명하기엔 초면에 부끄러움이 많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편견을 깨트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객석’ 기자가 클래식 음악만 듣고,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힙합음악만 듣는 세상. 생각만 해도 지루하다.




‘객석’과의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고 들었다. 똑똑한 타블로에게 부담스러운 인터뷰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누가 그런 말을 했나?



매니저가 그랬다.



사실이 아니다. 그저 인터뷰를 하기 전에 컨셉트와 소재를 미리 알아봐 달라고 했을 뿐이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에픽하이의 타블로도 클래식 음악과 ‘살짝’ 연이 닿아 있다. 이 정도만 알려주면 되는...



(기자 말 끊고) 바이올린을 했었다. 9년 정도 하다가 고 2때 그만뒀다.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게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이다. 갑자기 기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술의전당 앞 악기점에서 기타를 사고 바이올린을 그만뒀다. 바이올린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대학교 때 몰래 팔려다가 아버지에게 걸린 적은 있지만.



그 정도면 바이올린을 거의 전공할 뻔한 셈인데 지금 당장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있나?



비발디 ‘조화의 영감’ 6번. 마지막으로 리사이틀 했을 때 연주했던 곡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다. 판 교수라는 분에게 배웠는데 풀 네임은 생각 안 난다. 중국 사람으로 아이작 스턴의 제자였다. 레슨실에 늘 아이작 스턴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요즘도 음악을 만들다 보면 판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악기 연주는 코뮤니즘을 닮아야 하는데 네 연주는 너무 데모크라시 같아!’ 매일 혼났다.



중구계 캐나다 이민자가 그런 발언을 했다니 재미있다. 근데 왜 바이올린을 그만뒀나?



브란덴부르크 현주곡 3번을 하면서 힘들었다. 솔직히 부담이 컸다. 그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을 억지로 시작한 건 아니다. 꼬마였을 때 내가 우겨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들의 기대와 희망이 너무 커진다는걸 느꼈다. 그게 부담이 됐나 보다. 요즘 들어 현을 쓰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그때 바이올린을 계속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 말씀 치고 틀린 게 없다.



좋아하는 작품이나 음반도 바이올린과 관련된 것을 추천할 것인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음악을 좋아했다. 작곡가는 필립 글래스를 좋아한다. 그가 음악을 담당한 ‘디 아워스(The Hours)'는 책으로도 워낙 좋아했던 작품이거니와 영상만큼이나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해서 더 좋았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단순하면서 동시에 극적이다. 음악을 듣고 처음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월광' 소나타 때문이었다. ’월광‘이란 표제는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니다(독일의 평론가 루드비히 렐슈타프가 붙였다). 나 역시 달빛의 느낌이 아닌 다른 것을 느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여기저기서 자주 듣게 되는데 아직도 그 작품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그 ’포스‘란...



나 역시 베토벤을 치면서 건반에 깔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숨막히는 느낌.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단순하면서도 극적이란 지적은 아주 정확하다. 에픽하이의 음악 속에서도 터질 듯 극적인 요소가 많다. 하지만 미니멀리즘 음악과는 달리 채널이나 레이어가 훨씬 많다. 특히 뒤로 갈수록.



미니멀리즘 작품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내 음악 역시 아주 단순한 코드나 멜로디에서 시작된다. 뒤로 갈수록 극적으로 확장되는 영화처럼 클라이맥스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단순한 멜로디에서 시작해 결국 혼란스러움을 꾀한다. 내 음악도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미니멀하다.



힙합도 처음 국내 음악 시장에서 외면 받다가 ‘힙합전사’로 대표되는 과도기, 또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서히 대중화됐다. 그 결과, 이제는 실력 있는 힙합 뮤지션의 음악을 대중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들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수백 년째, 전체가 아닌 일부를 위한 음악으로 존재한다. 타블로만의 해결책이 있나? 딴 동네 얘기겠지만.



편견을 깨야 한다. 힙합도 그러한데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에는 힙합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무거운 음악이다. 거친 음악이다. 막 나가는 애들의 음악이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 당연히 대중은 ‘이건 날 위한 음악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음악 자체보다 장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부각되는 경우가 있는데 클래식 음악이 그 대표적인 장르, 아니 문화다. 게다가 대중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이 ‘감상’이 아닌 ‘교육’이 된 지 오래고. 이러한 문제를 내가 갑자기 발견한 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얘기다. 문제는 대중에게 나름대로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인들, 즉 대중과 클래식 음악의 고리가 돼야 할 사람들에게 있다.



우리가 언급한, 클래식과 대중 사이의 소위 ‘고리’ 역할을 하는 연주자들은 내가 볼 때 클래식 음악인이 아니다. 장르 자체가 클래식이 아니고, 실력 면에서나 고민하는 자세에서나 부족함이 많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피아노 들고 나와서 ‘난 클래식 음악인이다’라고 말하면 우선 높게 평가받는다. 음악을 잘해도 ‘난 대중 음악인이다’라고 하면 수준 낮게 평가하고. 그 편견이 언제 깨질지 모르겠다. 크게 한번 뒤집어지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다. 튼튼하고 실력 있는 좋은 ‘고리’가 필요하다. 여전히 좋은 음악은 팔린다. 나도 이번 음반이 나온 후에야 깨달았다(지난 1월 말 발매된 에픽하이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 은 2월 19일 현재까지 음반 판매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27개 트랙을 2CD에 담은, 꽤 중량감 느껴지는 음반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점도 큰 한계이다. 절절한 가사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재즈도 현대 장르지만 지금은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높고 먼 위치에 놓여져 있다. 궁극적으로 재즈 역시 가사 없는 음악이니까.



동감한다. 나도 가사 때문에 듣는 가요가 많다. 어렸을 때 들었던 곡들에 비하면, 지금은 '가사(歌詞) 문학'이란 표현이 떠오를 만큼 가요 가사가 대단해졌다. 한정된 시간에 상대적으로 많은 단어를 전달할 수 있는 랩 음악의 영향이 클 것이다. 타블로가 쓴 가사를 보면서도 깜짝깜짝 놀란다. 인터뷰 중에 쓰는 어휘를 봐도 그렇고, 스탠포드에서 영문학 학사 석사를 했고.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음악만 하고 싶다. 그게 예전에는 불가능한 거 같았다. 1 2집 때 음악만 했는데 대중이 나를 외면하더라. 아무리 열심히 좋은 음악을 만들어도 대중이 무관심하다는 생각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예 등지고 나 자신을 고립시킬까, 아니면 대중이 들을 수밖에 없는 음악을 만들까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기획사를 찾아가 토크 프로그램, 쇼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달라고 먼저 요구했다. 그 후 소위 스타가 됐고 3집 앨범을 냈는데 잘 됐다. 지금은 거의 음악 프로만 한다. 오히려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4집이 잘 돼서 다행이다. (내) 음악과 (타인의) 비즈니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순간이 또 올 것이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아예 나눠버렸다. 화가라면 그림을 그리는 내 방, 그림을 보여줘야 하는 공간이 서로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방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큰 거실로 들고 나왔다. 나와 보니 가족 친척 이웃이 다 온 거다. 내가 들고 있는 그림이 검은색이더라도 그 사람들 앞에서 검은색 표정까지 지을 필요는 없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 그런데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건 다른 얘기다. 마지막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했다. 너무 다재다능하다 보니 선택의 범위도 넓지 않은가.



예전에는 참 거창했다. 노벨 문학상도 받고 싶고 노벨 평화상도 받고 싶었다. ‘위대한 개츠비’ 같은 책도 쓰고 싶었다. 그런데 20대를 마구 내달리다 보니 꿈이 참 단순해졌다. 내가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나를 그 무엇보다 사랑해주는 한 여자를 찾고 싶다. 영원히 편안할 수 있는 만남을 찾고 싶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음악을 포기할 수 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배신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야망이, 꿈이 없어졌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근데 꿈을 계속 꾸다 보니, 내 꿈을 결국 이게 됐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예술잡지 <객석>의 Living next door Music(클래식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음악이야기) 섹션에 실린 인터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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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월광'을 듣고 숨막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나는 이 인터뷰를 읽고 숨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의 세계는 어디까지인가. 새삼 숨이 막힌다. 나의 좁은 세계와 얕은 지식과 비루한 사상은 언제까지고 이 사람에게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그 간극을 메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수집벽을 가진, 광적인 소유욕을 가진 한 사람의 팬으로 그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을 뿐이다. 결국 언제까지고 그를 알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극적 인식에 도달했다.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다고 내가 말했다면,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내가 말했다면 그건 농지거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스스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한계지음으로써 역설적인 웃음을 유발하려 던진 말일테니까. 하지만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불과 활자에서조차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 자신도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렇게 느꼈다. 음악을 감상하듯, 그림을 감상하듯, 인터뷰를 감상했다.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으며 읽었다. 그저 한 번 읽고 휙 던질 인터뷰 기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읽은 인터뷰 기사 중에서 가장 본질에 접근한 인터뷰라고 본다.



 그는 내게 빛이고, 동시에 어둠이다. 때론 나와 닮았으나 그것은 그의 방대한 스펙트럼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완전히 별개의 타인으로, 멀리 존재하고 있다. 아마 그 거리감이 그의 고독과 우울의 원인일 것이다. 곁에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를 고독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는 음악에 광적으로 몰입한다. 그것이 그가 택한 소통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로도 속일 수 없는 먼 거리. 그는 술을 마시면 늘 운다고 했다. 나는 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다음에 사랑에 빠질 여자는 아주 깊고 넓은 세계를 가지고 있는 여자라야 한다. 그사람과 아주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오노 요코와 같이 Yes로 그를 존재하게 할.



 정말 사랑할 여자를 만나면,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마지막의 문구가 예언처럼 들려, 섬뜩하다. 그가 어느날 그렇게 사라진다면, 나는 아마 오래도록 음악을 듣지 못할 것 같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져 인생의 나머지 부분들이 행복으로 채워지길 바라지만, 나를 비롯한 그의 많은 팬들은 음악이라는 것을 들을 때마다 슬픔에 잠기겠지. 인터뷰 기사를 읽고 뭐라도 써야할 것 같아 남루한 단어들로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숨이 막히고,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눈물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위해 아껴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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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