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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7 무엇이 인간을 이끄는가, <로드>-코맥 매카시


(이미지출처 : Yes24)



 상상력은 비극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인간은 오랫동안 비극을 사랑해왔다. 또, 어떤 이는 비극이 희극보다 예술적으로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내용을 후학들이 글로 남긴 <시학(詩學)>이라는 책은 시에 대해 다루면서, 특히 비극만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희극에 대한 내용이 담긴 2부가 있었으리라 예상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희극은 윤리학적으로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비극을 만들어내고, 비극에 매혹되는 이유를 아주 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의 말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라는. 이 두 가지 말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면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제시하여야 하며, 그 안에 실제 이상의 선인을 등장시켜야 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문학관은 현대 소설인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문학의 장르가 지금처럼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학>에서는 필연적으로 서사시, 비극, 희극, 송시, 드라마, 찬가, 풍자시 만이 디뤄지고 있다.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발생한 문학 장르인 소설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여지없이 통하고 있다. 적어도 이 소설을 볼 때는. 



 인간이 생각해내는 여러가지 비극 중에서 '지구의 종말'이라는 주제는 그리 참신한 주제는 아니다. 이미 태어나고 죽은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고, 각각의 상상력을 구체화한 시와 소설과 그림과 영화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끔은 예술가가 아닌 우리같은 이들도 이 문제에 깊이 빠져들 정도이니 이 주제가 닳고 닳은 주제임은 분명하다. 물론 과거보다는 현재가 그런 일이 일어날 개연성이 더 높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환경문제나 자원고갈, 핵무기 등으로 인해서)  하지만 우리는 주제가 같다고 해서 그 모든 작품들을 똑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플롯, 어조(혹은 문체), 표현의 방식, 작가의 태도나 세계관 등 많은 변수들이 이 문제를 실체화하는데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로드>는 아주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 땅은 어느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모든 식물과 동물이 죽었다. 전기도 끊겼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나마 남아있는 가공식품과 물, 옷가지, 석유 등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기본적으로 반응하는 인간만이 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어째서 인간이 그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으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역설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주 바람직하고 착한 이 소설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살아남은 자들 역시, 목숨을 이어가는 이유는 똑같이 '희망'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른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여기서 서로가 그리는 '다른 미래'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따르기라도 하는 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희망적인 시대에는 한 순간도 살아본 적 없는 아들이 더욱 그렇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아버지에게서 전설처럼 전해들은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추하는 어린 아이. 작가가 성선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가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반면 윤리와 도덕을 버린 자들이 그리는 사회는 그저 배고픔이 사라지는 사회이고, 육체적 괴로움이 사라지는 사회일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이들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가름한다.


 소설은 <로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정 형식으로 되어있다. 나그네로 떠도는 주인공들은 수많은 절망을 목격하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기적처럼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하고, 다시 굶주리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아이의 순수가 아버지를 구원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목숨이 아들을 살리기도 한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몇 장 남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지 조바심이 나면서도, 나처럼 다음 장으로 넘기기에는 두려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소설은 비극이고,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답게 사는 것과, 그저 사는 것과의 차이. 우리는 이 개연성있는 비극이 현실로 닥치기 전에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코맥 매카시는 우리에게 바로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여정을 이끄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소설에서 발견하길 바랐을 것이다.






p.s.
비슷한 주제의 소설을 추천한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영화로는 '배틀 로얄'과 '우주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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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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