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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5 베를린 천사의 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았다. 1987년에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를 21년만에야 보다니 나란 인간은 참 게으르고 늦다. 거친 흑백톤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충분히 옛날 영화처럼 보였다. 무채색의 롱코트를 입고 꽁지머리를 묶고 거리를 배회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좀 낯설었다. 그들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연민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권태로워보이기도 했다. 죽지않는 영원을 소유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태.

  천사들도 때론 농담을 한다. 그들은 피부와 손가락에 닿는 물건의 느낌과 커피의 맛과 여인의 귀와 목선에 흥분하는 모습에 대한 농담을 한다. 농담이라는 것은 대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에서 유발된다. 즉,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스운 것이다. 그들은 농담을 하고, 웃는다. 하지만 그 농담에는 진심이 들어있다.   

  어떤 천사는 거듭하여 꿈꾸다가 꿈꾸던 것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가 얻은 것이라곤 발자국 정도일 뿐일지라도 그는 행복하다. 사람들의 마음이 읽히지 않고, 아무것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야하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다. 그는 그가 꿈꾸던 방식대로 의미있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호메로스는 잊혀진 이야기꾼이지만, 인간의 이야기는 결국 비슷한 테마를 가지고 반복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완벽히 잊혀지진 않을 것이다. 쉽게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믿는 것, 어느 순간 의미있는 타인과 만나는 것,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절망에서 사랑으로 옮겨가는 것. 이 세 가지는 살아있는 한 붙잡아야할 슬픈 희망일테니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살아 숨쉰다는 게 한층 고맙게 느껴진다. 나의 절망을 위로해주는 천사도 지금 내 곁에 있을까. 누군가가 갈망했던 삶을 너무 쉽게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도 함께 하게 된다. 오래 곱씹어야할 영화이다.




(감상을 수정하여 갱신했습니다.)





  +
 
타블로의 노래에서
언제나 반복되는 구절
"Faith, Destiny, Love"과 너무나 닮아있는 영화.



이 영화와 관련있는 에픽하이의 노래 Paris,  이터널모닝의 White





Paris는 노래의 설정 자체가 닮아있다.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인간이 만나 순수한 사랑을 한다는 것.







이터널 모닝의 타이틀곡인 White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OST로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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