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 말하는 나의 앨범-페니(Pe2ny)

출처 : IZM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19645&bigcateidx=11&width=250)


페니는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와의 2인조 유닛 소울 챔버(Soul Chamber)의 멤버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래퍼의 곡에 비트메이킹을 담당했으며, 2007년에는 타블로와 이터널 모닝이라는 프로젝트를 결성, 순수 경음악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큰 반향을 얻은 작품을 만든 힙합 프로듀서이다. 2002년, 재지(jazzy)한 느낌이 강한 인스트루멘틀 EP < Journey Into The Urban City >를 선보였던 터라 이번에도 그와 닮은 음악을 들려주지 않을까 추측되기도 했지만, 최근 발표한 작품은 20명이 넘는 MC들이 참여한 ‘랩 앨범’이여서 다소 예상을 뒤엎는다. 그에게서 첫 정규 앨범 < Alive Soul Cuts Vol. 1 >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았다.




단기 완성 프로젝트, 그러나 장기간 미뤄둔 숙원 사업

일단은 구상하게 된 계기와 시점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Alive Soul Cuts’라는 타이틀로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했거든요. 컴필레이션 성격을 띠는, 원래 소수의 MC만 참여하는 걸 계획했어요. 이를 테면 누자베스(Nujabes)의 < Hydeout Production > 앨범 같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원한 거죠. 그런데 후반으로 가면서 처음 의도랑은 다르게 많은 인원이 참여하게 됐어요. 회사에서도 좀 더 많은 MC가 참여해서 더 많은 사람이 듣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반영해 나온 결과에요.

2001년쯤부터 생각해 두었던 건데 진행은 못 하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 빠르게 추진하게 되었어요. 작업은 발매 3개월 전부터 시작했고요. 전에 만들어 두었던 곡들은 전혀 사용을 안 했으니 3개월 안에 끝마치는 단기간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해치운 거죠. ‘Vol. 1’, ‘Part 1’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시작한다고 해도 그다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작품들도 많지만, 저는 계속해서 할 생각이에요. 여러 여건이 받쳐주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제 능력으로라도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 중 하나에요.

아날로그 느낌과 회색 톤이 강조된 음악

이번 앨범 제작하면서 특별히 중점을 둔 것이 있다면 사운드적인 측면이에요. 전자 악기를 사용하든 어쿠스틱을 사용하든 그런 걸 떠나서 요즘 음악은 억지로 벌리고 강하게 만드는 걸 중요시해요. 제 음악은 밀도는 떨어지지만, 저는 이게 더 따듯한 소리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개인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래도 제 귀엔 가장 잘 맞았어요. 색깔로 치면 ‘회색 톤’을 강조했다고 할까요? 샘플 소스를 사용하는 것이나 믹스를 할 때에는 질감에 대한 부분을 신경 썼죠. 요즘 음악 트렌드보다는 약간 거칠고 아날로그적인 소리들을 잡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요.

멜로디를 돋보이게 한 작법의 변화

그런 작법들 외에도 악기 사용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12비트 샘플러 한 대랑 앤소닉(Ensoniq)사의 ASR-X라는 장비를 쓰고 있어요. 사용하기도 무지 편하고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많이 표현할 수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회색빛’이 나는 데에 도움을 많이 주었죠. LP에서 디깅하지 못한 소스들을 CD 안에서도 샘플링할 수 있고, 제가 운용하는 드럼 샘플이랑 잘 묻히지 않을 때에는 12비트 샘플러를 통해서 떨어뜨린 다음에 다시 샘플링하면 드럼이랑 잘 맞는 사운드가 나오더라고요.

이터널 모닝 끝나고 나서 음악 레슨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 걸 배우다 보니까 같은 샘플링이더라도 작법 쪽에서 많이 변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드럼을 먼저 프로그래밍했다면 이제는 샘플링, 프로그램, 그다음 드럼을 어울리게 얹는 순서로 바뀌었어요. 그러다 보니 드럼보다는 멜로디 쪽에 많이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샘플링으로만 만들지 않고 미디를 쓴 것도 그런 영향을 줬고요. ‘One light’에서의 드럼 롤과 신스는 직접 연주했고 곡이 끝난 다음에도 밴드 연주를 연결했거든요.

편해서 아쉬웠던 스튜디오 작업

객원 래퍼들에게 가사 내용이나 뭐 그런 걸 요구한 게 없어요. 시작할 때 분명히 “너희들 디렉팅 안 볼 테니까 너희 가사로 진행을 해보자”라고 했어요. 알아주는 실력파들인데다가, 도와주는 사람한테 일일이 참견하는 건 앨범 성격이랑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서 뒤에 앉아서 자다가 끝나면 확인하면서 큰 선만 건드린 형식이거든요. 충돌은 아예 없었고, 녹음은 편안했는데, 돌이켜보니까 그게 제일 신경 못 쓴 부분이 되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가사를 훑어보니 수록곡들이 거의 다 비슷한 내용인 거예요. ‘다른 걸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거죠.

각별한 뜻을 담은 ‘Still shining’

다른 곡들과 달리 ‘Still shining’은 원래 생각해 둔 곡이라 조금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제이 딜라(J Dilla)를 워낙 좋아했고,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꼭 한번은 해보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랑 같은 세대에서 비트 만들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존경하는 프로듀서잖아요. 돌아가신 다음에 상실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 걸 함부로 얘기하기에는 쉽지 않고 더구나 제가 지금은 랩을 하는 게 아니니까 표현도 제한되는 게 사실인데, 콰이엇이랑 작업을 하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그 친구한테 애초에 곡을 만들기 전부터 얘기했어요. 존경하는 뮤지션을 추모하고 헌정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때로는 힙합적이지 않은, 의도와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보너스 트랙 ‘You!!’에 대해 말씀이 가장 많으시더라고요. 들으시는 분들이 깜짝 놀라요. ‘왜 리오 케이코아를 여기에 넣었느냐?’ 막 그러시는데…. 전형적인 힙합이라기보다 듣기 편한, 정말 이지 리스닝이잖아요. 약간은 자위성으로 만들었다고 할까요? 애초부터 보너스 트랙으로 실을 걸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니깐 제가 언제든지 하고 싶은 건 그런 식으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사실 멜로디 쓰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여자 보컬이 들어가나 남자 보컬이 들어가든요. 그런데 ‘Musicbox’ 같은 곡은 일단 특정 가수를 염두에 두고 멜로디를 썼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베이지 씨를 미리 생각해 두고 작업한 거라 그분 목소리를 상상하며 멜로디를 썼죠. 타이틀곡인 ‘Alive’에 대해서는 가장 힙합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이런 게 힙합이다’하는 기준을 이야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하고 싶었던 작법을 구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온 노래라고 볼 수 있어요.

다음 목표는 흐름과 굴곡을 표현해내는 것

마니아 쪽에서 실망하시는 분이 많았던 게 초반에는 마음에 걸렸어요. 오히려 음악 하는 분들은 좋아하는 편인데. 정규 앨범을 낸 적이 없어서 힙합 팬들은 저에 대한 약간의 선입견이 있나 봐요. 제가 한 2001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음악이 무척 투박했거든요. 이 앨범은 ‘내가 조금 더 학습을 했고, 공부를 해서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드리는 결과물인데, 예전에 비해 무난해지다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또 하나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흐름’이에요. 외국 음반 중 잘 만들어진 작품은 전체적인 굴곡이 눈에 보여요. 곡에만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게 보이는데, 나중에 마스터링하고 모니터를 하니까 제 앨범은 너무 일정하더라고요. 한 곡 한 곡 작업은 많이 했지만 정규 앨범을 제작한 건 처음이라 그런지, ‘흐름’을 만들어가는 데에는 아직 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 Vol. 2 >나 < Vol. 3 >에서는 적은 인원의 MC들이랑 프로젝트 성향을 띤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하나의 주제 아니면 하나의 얘기들을 재밌게 진행한다든가 이번에 미처 표현하지 못한 그런 굴곡들을 내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 이대화, 한동윤
정리 : 한동윤
2008/09 한동윤(bionicsoul@naver.com)

Posted by po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