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나는 못말리는 라디오광이었다. 임용고시 공부를 하며, 혼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못 견디게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로 삼은 것이 라디오였고, 타블로라는 사람을 만났다. (에픽하이의 팬이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밤은 이상한 시간이다. 낮에 곤두섰던 마음들도 말랑말랑해지고 만다. 그런 시간, 밤 10시에 누군가를 매일 만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로 작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밤의 라디오는 요물이다.

  

 정말 미친 듯이 라디오 방송을 사수했다. 못 들은 날은 다음날 다시 듣기로라도 꼭 들으며 1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인터넷의 라디오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함께 댓글로 수다를 떨며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유쾌한 듯 하면서 우울하고, 천재적이면서도 누구보다 바보같은 그 먼 두가지 축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이 좋았다. 학벌도 좋고, 인기도 있고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결핍'은 못견디게 매력적이었다. 글쎄,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 자신보다 타블로를 더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타블로가 천착(穿鑿)하는 제1주제는 '꿈'이었고, 그래서 많은 루저-적어도 방송을 듣는 순간에는 루저였을 것이 분명한-들이 그를 추종했다.

 

 - 괜찮아 질거야. 꿈을 버리지 마.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게 다였다. 때론 바보같이 웃고 떠들며 청취자들을 웃기기도 하고, 기발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으로 신나게 하기도 하고, 때론 뭉클한 감동과 울음을 가져다주기도 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전한 것은 그게 다였다.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의 모범답안을 타블로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용기가 났던 것 같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너무 우울할 때에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꿈일수록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도 우리에게서 희망을 얻었다.

  

 내 꿈은 하늘을 걷는
 난장이의 꿈
 무지개를 손에 거머쥔
 장님의 꿈
 달콤한 자장가에 잠이 든
 고아의 꿈
 시간을 뒤로 되돌린
 불효자의 꿈
 내 꿈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꿈
 내 꿈은 크게 노래 부르는
 벙어리의 꿈
 내 꿈은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속삭임에
 미소를 짓는 귀머거리의 꿈


- 에픽하이 5집, 타블로 솔로곡 <낙화>
 

 

  비극적인 꿈일수록 더 격려했던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가 있어서, 나는 꿈꿀 수 있었다. 죽고 싶었던 순간에도 살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그 라디오에 함께 미쳤었던 나와 동갑내기 친구 둘-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단지 라디오라는 공통점 때문에 만난- 이렇게 세 명이 모두 올해 취업을 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던 일로.

  

 꿈꾼다는 일은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많은 시간을 라디오에 투자했지만, 그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2시간씩 400일 넘는 시간이었으니 그 시간 동안 공부를 했다면 뭐가 되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을 버티게 하는 그보다 더 큰 위안을 얻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의 그 방송들, 그 때 만난 사람들, 그 때 만난 타블로와 에픽하이는 이제 나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 되었다.

 

 



연말이 되니 자꾸 회고록 비슷한 것을 쓰게 된다.
나의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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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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