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벌받아 죽을 업보

얼마 전에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난 천벌 받아 죽을 거라고. 이렇게 취업이 어렵고 경제난인데 일어나서부터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음악 듣고 영화 보고 하는 것밖엔 없다고. 이것도 '의무감'이 섞이기 시작하면 나름 고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힘들게 직장 생활 하는 친구들보다야 힘들진 않을 것이다.

대신에 '글쓰기'의 업보를 받았다고 할까. 들어서 좋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뭐라도 써내야 필자고 평론가다. 방에서 푹푹 썩어가면서 공중부양 기분이 들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워지면 그 때부터 남는 건 '깡' 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내일까지 넘겨도 되겠습니까?” 대부분 별 말없이 요구를 받아주긴 하지만 창피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제도 핀잔을 들었다. 에디터스 뷰가 너무 업데이트가 느리다는 것. 백배 공감이다. -_-; 주간지나 각종 잡지들은 가끔씩 '일기' 같은 글들도 잘 올라오고 하던데, 넌 너무 에디터스 뷰에 강한 고민만 담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이틀 전에도 한 필자와 만나 '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넌 왜 항상 글이 엉망이라고 투정이냐, 롤링 스톤 부러워 죽겠다, OOO는 글이 정말 좋아졌더라 등, 음악 글에 대한 잡담, 뒷담화, 질투로만 새벽까지 시간을 넘겼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 그날 받았던 신생 잡지의 예비호를 읽는데, '얼마나 잘 썼나...' 작은 글씨가 빼곡한 칼럼 란을 집중해서 읽다가 결국 멀미가 났다.

요즘은 정기 구독하는 해외 음악 잡지들이 더 늘었다. 미국 잡지만 봤더니 영국 쪽 신(新) 흐름들이 약해지고, 너무 록 잡지 위주로만 봤더니 주류 팝 음악계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들을 놓친다. 그래서 하나 둘 성향이 다른 잡지들을 늘리다보니 통장 잔고가 위협 받는 지경이다. 주변에선 내가 욕심이 너무 많다지만 그래도 일단 받아서 읽다보면 그 놀라운 정보의 홍수에 행복하기 이를 데 없다. 예를 들어, 릴 웨인(Lil Wayne)이 왜 그렇게도 문신을 많이 하고 오토 튠을 많이 쓰는지 그 이유에 대해 구글에 검색하면 나올까? 저번 롤링 스톤 커버스토리엔 나와 있다.

계속 읽고 계속 써보지만 일단 쓰다 보면 지우기 일쑤다. 다 써놓고 다음 날 아침에 읽어보면 다시 써야겠다 마음먹는 글도 많다. 한 번은 맑은 햇살에 취해서 감상적인 글을 날렸다가 그 날 새벽에 무섭게 좌절한 적도 있다.

가끔 음악을 듣다보면 이 작곡가가 “아.. 난 정말 대단한 곡을 쓰고 있다”라는 자신감에 차 있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곡들은 짧은 시간에 한 번에 써낸 듯 막힘이 없고, 변칙적인 표현에도 자신감이 묻어 있으며, 느리고 부드러운 곡임에도 에너지가 발산된다. 맑은 날 이어폰을 꽂고 밖을 걸으며 그런 노래를 들을 때면 평생 이런 영감에 취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하다.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맑아지고 차분해져서 글이 잘 써진다는 말도 있던데, 아직 그렇게 까진 하고 싶지 않다. 미리 피우고 있으면 모를까 굳이 글 좀 잘 써보겠다고 건강까지 망치고 싶진 않으니까. 생각해보니 별 대책이 없다. 그냥 열심히 계속 쓰는 수밖에.

오늘도 월요일 아침까지 넘겨야 할 원고가 몇 개 있다.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미뤄두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고업이 몇 시간 뒤로 다가 왔다. 일주일 내내 온갖 예쁜 것과 고전들을 탐닉하며 지냈으니,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세상은 참 공평하다.
2009/04 이대화(dae-hwa82@hanmail.net)


출처 : 이즘(IZM)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0160&bigcateidx=19




난 팝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이 참 부럽다.
로망으로 생각하는 직업 중 하나. ^^
하지만 역시 나름의 고충은 있는 거겠지.

...

그래도 역시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Posted by po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