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프리미어58호(12.16~31)



신기주(이하 신) 음악과는 다른 분들이라고 들었어요. 유쾌한 분들이라고요.
넬 유쾌한 정도는 아니고요. 우울한 사람들은 아니죠.
신 넬의 음악이 지닌 정서는 회색빛이잖아요. 그 빛깔은 늘 질리지 않고 중독성이 강하죠.
넬 우리 음악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처음에 들었을 때 귀에 감기는 음악이 있어요. 넬의 음악은 들을수록 더 알 거 같고 더 새롭다고 해요.
신 넬한텐 유난히 광팬이 많아요. 멤버들 각자한테도 따로 따로 팬들이 많고요. 찰나적으로 듣고 마는 음악도 있죠. 넬의 음악은 감성적이고 반복적이고 중독적이죠. 일단 빠져들면 무한 반복하게 돼요.
넬 인상적이었던 게요. 어떤 팬은 3년 전 음반을 다시 들으면서 새로움을 느낀대요. 음악엔 한 가지 감정만 있어선 안 될 거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감정만 강요하는 음악들이 많죠. 요즘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 감성의 어느 지점에 와 닿는 것처럼 느끼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인터뷰할 때 가사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냥 듣는 사람이 음악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느꼈으면 싶거든요.
박은성(이하 박) 그래요?
넬 밴드 음악은 그래야 해요. 음악 안에 숨어 있는 요소들도 많을 수 있거든요. 그 소리가 어느 날 문득 와 닿게 되는 거죠.
신 그러자면 듣는 사람이 적극적이어야 하잖아요. 넬의 음악은 골수 팬들을 만들어내지만 강요 받는 데 익숙해지고 떠먹여주는 데 익숙해진 청취자들한텐 힘든 음악일 수 있어요.
넬 그게 넬 음악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어요. 흘려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보단 음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듣게 만드는 스타일이긴 해요. 그게 왜 단점이냐면, 요즘에는 다들 앉아서 음악을 듣지 않잖아요. 운전을 하거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면서 켜놓을 수 있는 음악을 필요로 해요. 싸이월드나 휴대폰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죠. 다른 일을 하는 데 부수적인 방편으로 쓰여요. 그런 면에서 넬의 음악은 별 쓸모가 없어요. 그냥 틀어놓기만 하면 버거울 수 있어요.
신 배경음악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요즘 시대에 음악으로 승부를 한다는 게, 또는 음반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음악을 한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넬 한 두 시간 동안 음악만 소비하기엔 세상엔 여유란 게 없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잘 쓴 책처럼 한 두 페이지만 읽으면 책 전체를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음악을 해야겠죠.
박 넬의 음악은 배경 음악이 못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넬의 음악은 어떤 음악보다 이미지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어떤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달까요.
넬 작업을 할 때 '시각화'라는 걸 늘 중요하게 생각해요. 음악 작업을 할 때나 후반 작업을 할 때 떠오르는 영상들이 있는데요. 시적인 것들이 많죠.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사운드를 만지곤 해요. 그렇게 시각적인 음악이란 지점이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에 비해 많다고 생각해요. 의도하는 부분도 크고요.
신 어떤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곡을 쓰기 시작하는 건가요?
넬 곡을 쓸 때 처음에 막연한 느낌 같은 게 있잖아요. 영상 하시는 분들은 그걸 이미지로 풀어내면 되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듣는 사람이 음악을 통해서 내가 본 이미지를 느끼길 바라는 거죠. 사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나, 믹싱을 하는 순간에도, 그런 걸 굉장히 많이 신경 써요.
신 가사는요? 가사로 이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넬의 음악은 설명적이진 않아요.
넬 음악은 뉴스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도 아닌 거 같아요. 음악만의 전달 방법은 따로 있죠. 넬의 경우엔 이미지가 자아내는 감정을 전달하는데요. 그걸 듣는 사람이 똑같이 보고 있다고 생각되면 쾌감이 대단해요. 그건 정말 쾌락이죠.
소통은 대중을 상대하는 예술가들한텐 누구에게나 쾌락이죠. 어떤가요? 일본에선 한참 치유계 음악이 인기였어요. 사람들이 넬의 음악을 들으면서 위안을 얻거나 영혼의 안식을 얻거나, 이런 거에 관심이 있나요?
넬 딱히 치유계 음악은 아니지만 멤버 각자가 생각하는 바는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넬의 음악은 기본적으론 우리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이 아닐까 싶어요. 이기적인 거 같기도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음악을 해요. 하지만 넬의 음악 때문에 듣는 이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죠. 외로울 때 친구가 돼 줄 수 있다면. 하지만 가장 먼저 위로의 대상은 우리 자신이죠.
신 음악 하는 사람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넬 우리한테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해요. 힘든 시기도 있었고 어려운 일도 있었어요. 그 때 음악 작업을 안 헀으면 밑도 끝도 없이 방황했을 수도 있어요. 그 찰나에 음악을 하면서 다시 올라올 수 있었어요. 그 때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음악은 나를 망가지지 않게, 사람으로서 내가 망가지지 않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길인 거 같아요.
신 살면서 그런 의미를 못 찾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넬 음악 하는 게 축복인 거 같아요.
신 넬의 음악엔 넬이 얼마나 들어가 있나요? 사랑이든 상처든 개인적인 경험이나 정서가 많이 녹아있는 편인가요? 누군가는 창작을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치기도 해요.
넬 늘 자기 안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거 같긴 해요. 확실히 편하고 안정적일 때보단 힘들고 안 좋을 때 음악이 더 잘 되는 거 같긴 해요. 모든 프로젝트에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회사라든지 가족이라든지 친구라든지 그런 것들에 얽매여 있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죠. 내가 나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무엇이 필요해요. 곡을 쓰는 단계에선 그게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후반 작업을 할 때는 좀 더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게 좋고요. 창작을 위해서 자길 바닥으로 내몬다는 말, 공감이 되네요.
신 음악은 축복이지만 짐은 아닌가요?
넬 저는 주기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오는 거 같아요. 한 4개월에서 5개월 정도 만에 한 번씩 슬럼프가 와요. 이건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스스로를 푸쉬하는 편이거든요. 뭔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고 그런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요. 자신을 음악을 하는 환경에 집어넣고 조그만 거라도 꺼내려는 성격이거든요. 매일 작업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슬럼프가 주기적으로 찾아와요.
박 주기적이요?
넬 앨범을 낼 때만이 아니라 앨범을 내기 전이나 앨범을 낸 후에도 계속 음악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남들보다 매너리즘이 더 많이 올 수 있죠.
신 지금 뭐가 불안한가요?
넬 저녁을 못 먹게 될까 봐 불안해요. 경제도 불안해요. 경제가 안 좋아지면 대중문화도 죽잖아요.
신 넬의 노래에 담긴 것처럼, 지금 사랑이 불안한 사람은 없나요?
넬 불안해 하면, 진짜로 힘들 거 같아요. 사랑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있는 거잖아요. 우리 모두 이제 스물 아홉 살이에요. 그게 반복된다는 것쯤은 알아요. 큰 불안감은 없는 거 같아요.
신 그렇게 사랑에 대해 낙천적인데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쓰고 음악을 하는 거죠?!
넬 다른 거 같아요. 헤어짐은 늘 힘들어요. 하지만 힘든거랑 불안한 거랑은 다른 거 같아요.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건 슬픈 거죠. 불안하진 않아요.
박 이번 앨범 제목인 'THE TRACE'는 넬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 같아요. 넬은 현재보단 늘 과거에 기대는 느낌이랄까요.
넬 기댄다기 보단... 그냥 우린 언제나 과거 속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지금 얘기하는 이 순간도 1초가 지나면 과거가 되잖아요. 그런 과거가 있어서 우리가 있어요. 이번 앨범은 그 동안의 우리 모습을 담은 DVD와 함께 나왔어요. 지금 우린 20대의 마지막인 스물 아홉 살이거든요. 우린 20대의 우리가 공연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어요. 우린 넬이란 밴드로 꽤 오래 함께 작업해 왔어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추억할 수 있게끔 만들었어요.
신 과거를 추억하는 건 넬의 음악을 관통하는 정서 같아요.
넬 삶은 과거거든요.
신 넬이 왜 넬인지는 잘 알아요. 그런데, 조디 포스터한테선 아직 전화라도 한 통 안 왔나요?
넬 아차, 전화번호를 안 알려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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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기주, 박은성 기자
사진: 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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